<16회> 아픈 상흔 젊은 나라, 이제는 초록 색깔로 부상
우간다 부품보 마을에서 긴 막대기를 들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청년들과 아이들. 마을 어느 아이의 할례 행사가 있는 날이다. 예전에는 막대기 대신 창을 들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전통은 남아있다. 최상기씨 제공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 부른다. 수년 전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의 흙은 거무스름한 잿빛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중에 동아프리카 대협곡의 붉은 황토를 본 후로는 흑인들의 땅이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믿었다.

영국의 탐험가 헨리 스탠리는 19세기말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돌아와 쓴 책의 제목을 ‘암흑 대륙’이라고 붙였다. 개발되지 않은 미개척의 땅. 문명의 그림자에 갇힌 세계. 그래서 어둡게 느껴지는 대륙. 극심한 기아와 오랜 내전으로 얼룩지고, 에이즈와 에볼라, 말라리아 같은 무서운 질병이 도사리는 검은 땅.

그러나 어쩌면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베일 속에 가려진 미지의 세계. 아직도 깃털로 장식한 토인들이 창을 들고 뛰어나오거나, 깊은 밀림 속에서 원시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우리의 관념적 무지가 만든 단어일 수도 있다.

적어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의 아침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검은 대륙이라는 말이 오래 전에 사라졌어야 할 관용 표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아프리카의 중심, 아프리카의 진주, 우간다는 싱싱한 초록의 색깔로 부상하는 젊고 활기 가득한 나라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서쪽으로 두어 시간 비행하면 바다처럼 보이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슈피리어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다. 충청, 전라, 경상도를 모두 합친 정도의 면적. 우간다는 이 호수를 사이에 두고 케냐, 탄자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바다를 접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호수 덕분에 어류는 커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비중을 차지한다. 수도 캄팔라 인근의 엔테베 국제공항은 이 호수를 끼고 있다. 마침 석양이 질 무렵 비행기가 공항에 내리면서 붉게 물들어 가는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질 무렵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튿날 아침, 여느 열대의 아침처럼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식전부터 에너지 넘치는 우간다 청년들이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간다 최대 커피영농조합인 누카페(NUCAFE) 직원들이다. 케냐와의 국경 근처인 엘곤산까지 가려면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한다며 아직 여장도 풀지 못한 여행자를 보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그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이 청년들만큼 젊은 도시 캄팔라의 아침은 활력으로 넘쳤다. 이른 시간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길을 오가고, 좁은 도로는 멈춘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차들로 가득했다. 시가지를 빠져 나오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교외 풍경은 케냐, 에티오피아 등 주변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간다. 모든 면에서 생소한 나라다. 아프리카 정 중앙에 위치해 있어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리는 나라. 동쪽으로 케냐와 맞대어 있고, 북쪽은 남수단,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과 국경을 이루며, 남쪽으로는 탄자니아와 빅토리아 호수를 공유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710달러의 가난한 나라.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 치하에 있다가 1962년 독립한 이후, 군사 쿠데타와 격렬한 내전, 제노사이드(집단 대학살), 독재자의 장기 집권 등으로 피비린내 나는 현대사를 겪어온 나라. 그러나 이런 아픈 내상과는 다르게 이날 마주한 우간다의 아침은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활기가 넘쳤다.

족히 대여섯 시간을 부지런히 달려 엘곤산 기슭에 있는 부품보라는 산골마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후 안내를 받아 곧장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니 커피생산조합 소속의 농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벽에는 1986년부터 독재 권력을 이어온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의 초상이 걸려있고, 그 아래로 부품보 오가닉 농장조합의 비전과 미션이 나란히 적혀 있다. 마을 이장은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자신들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커피 재배 농가들을 직접 방문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순간, 긴 막대기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청년과 아이들의 무리와 마주쳤다. 어느 아이의 할례 의식이 있는 날인 듯하다.

소떼처럼 달려가는 아이들. 아프리카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특히, 우간다와 르완다, 에티오피아처럼 최근 수십 년 동안 내전과 기아의 상처가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많은 아이들이 눈에 띈다. 우간다의 경우 가구당 6명 가량 되는 출생아 수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많은 어른들이 목숨을 잃은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우간다의 인구 성장률은 3.3%로 세계 5위 수준이고, 주변 국가들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엘곤산 자락의 커피 농가에서 만난 아이들. 오랜 내전을 겪은 우간다에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어른들의 아픈 경험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최상기씨 제공

우간다의 북쪽 지역은 여전히 분쟁 중이다. 62년 독립할 때부터 시작된 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아프리카 최장기 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간다에는 현 정권에 반목하는 5개 반군 조직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반군인 ‘신의 저항군(LRAㆍLord’s Resistance Army)’은 우간다 아촐리 지방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게릴라 활동을 벌여왔다. 다행히 정부군과 아프리카연합군 등의 소탕작전으로 2014년 이후로는 세력이 많이 약화됐지만 꺼지지 않은 잔불처럼 갈등과 폭력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LRA의 지도자 조셉 코니는 인터폴에 수배된 중대 범죄자로, 30년간 10만명 이상을 살해하고 6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납치해 소년병으로 부리면서 강간, 폭행 등 온갖 잔악한 행위를 자행해 왔다. 이 반군 조직의 최초 근거지가 우간다 북부 지역인데, 이 곳은 아라비카 커피 산지 중 하나인 서나일(West Nile) 지역과 겹친다. 그래서 커피 헌터들은 우간다 동부의 엘곤산 주변과 서쪽의 르웬조리산 부근을 주로 찾는 반면, 북쪽 산지로는 잘 가지 않는다.

사실 우간다뿐 아니라 커피 산지들을 돌아다니는 일은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아라비카 커피 산지는 대개 열대 기후의 고도가 높은 산악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이들 커피 생산 지역이 반군 집단이나 범죄조직이 숨어있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간다 북부 지역 외에도 에티오피아 서남부의 카파나 짐마, 동쪽으로 소말리아 국경과 가까운 하라르와 같은 커피 산지는 조심해야 할 위험지역이다. 홍해를 경계로 에티오피아와 마주하고 있는 모카커피의 본고장 예멘은 분쟁으로 여행금지국이 된 지 오래다. 지금은 평온을 찾았지만, 우간다 남쪽의 커피 생산국인 르완다도 종족 간 갈등으로 십여 년 전까지 온 국토가 전쟁터였으며, 잇따른 보복과 광기로 80만명 이상의 주민이 학살됐다. 르완다와 인접한 작은 나라 부룬디 역시 비슷한 시기에 십 수만 명이 종족 간 분쟁으로 희생됐다. 몇 해 전에 만난 르완다의 한 커피 수출업자는 커피 체리가 붉은 이유가 전쟁과 학살 때문이라는 섬찟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중미 지역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온두라스나 엘살바도르, 멕시코 등의 커피 생산 지역은 반군은 아니지만, 마약과 무기 등을 거래하는 무장조직들의 은신처와 많이 겹친다. 몇 달 전 과테말라의 커피 농장을 방문하는 길에서는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 행렬과 마주치기도 했다. 경제난과 조직 범죄, 정치 불안을 피해 고난의 길을 떠나는 온두라스의 카라반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위험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때론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으니 측은한 마음과 함께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중미의 커피 산지들을 방문할 때는 무장 경호원을 대동하거나, 실탄이 장전된 총을 허리춤에 찬 현지인들과 함께 다닌다. 물론 그렇게 무장을 하더라도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나 중미 등 오랫동안 전 세계 커피 산지들을 돌아다닌 국내외 커피 헌터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저런 머리카락이 쭈뼛한 경험담을 전해 듣기도 한다.

향기롭고 감미로운 커피의 생산지가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과 공존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많은 커피가 정치와 치안이 불안한 국가에서 생산되고, 특히 다른 작물과 달리 오지의 산악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특성 때문에 커피 산지의 위험은 곱절이 된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또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지만 우간다 커피 농민들과 그 가족들의 기억의 편린에는 내전으로 인한 아픈 과거의 상흔들이 남아 있을 지 모른다. 또 그런 고통이 어느 정도 치유되었는지, 지금은 살상과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을지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저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와 이 나라가 겪은 아픈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를 고대할 뿐이다.

최상기 커피프로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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