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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레넌 벽을 지켜라” 홍콩 지지 한국 대학가 왜 시끌시끌한가

입력
2019.11.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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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유학생,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국내 대자보 훼손 논란 

 훼손 행위 채증 한국 학생과 물리적 충돌…中 대사관은 옹호 담화 발표도 

국내 대학가에서 훼손된 채 발견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제공
국내 대학가에서 훼손된 채 발견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제공

“연대합니다.” “응원합니다.” 한국 대학생들은 이 짧은 문구를 메모지에 적어 ‘레넌 벽’에 붙였습니다. 약 150일간 이어져 온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행동입니다. 한국 대학에서 메모지나 대자보 등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붙어있는 대자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또 다른 대자보 또는 메모로 표현하면 되는데요. 최근 이 메모와 대자보를 아예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체 한국 대학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대학가 대자보 쟁탈전은 언제부터? 

1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군자관 앞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를 중국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훼손하고 있다. 독자 제공
19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군자관 앞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를 중국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훼손하고 있다. 독자 제공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대자보, 현수막, 레넌 벽이 생기는 족족 중국 유학생들이 이를 훼손한다는 제보가 등장한 건 지난 6월 무렵입니다.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서강대에 홍콩 유학생이 붙인 대자보를 중국 유학생들이 무례하게 떼어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콩 시위가 계속되면서 한국 대학생들이 연대를 선언하자 중국 유학생들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거죠.

그러다 홍콩 시위와 경찰의 진압이 격렬해지면서 대학가에 지지 대자보가 더 많아졌죠. 그런데 지난달 말 연세대 곳곳에 걸린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현수막이 무단으로 철거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습니다. 이 같은 갈등은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전남대, 세종대 등 대학가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죠.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이하 학생모임)’은 서울대를 시작으로 국내 대학 곳곳에 레넌 벽을 설치했지만, 중국 유학생들로 추정되는 이들로부터 훼손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 유학생들은 왜 나섰나? 

국내 대학가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레넌 벽.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제공
국내 대학가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레넌 벽.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제공

홍콩 민주화 시위를 반대하는 중국 유학생들은 ‘원 차이나(One China)’, 다시 말해 ‘하나의 중국’을 강조합니다. 홍콩은 중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이며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중국의 치안을 위협하는 폭력적 행동이라는 주장이지요. 더 압축해보자면 “이건 중국 안에서 벌어지는 집안 문제” “너희는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 중국 유학생들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레넌 벽에 붙은 문구이기도 해요. 이들은 홍콩 시위 참여자들이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고, “폭력을 반대한다”고도 외칩니다.

중국 유학생들이 레넌 벽이나 대자보로 반론을 피력하는 행위는 보호받아야 마땅합니다. 대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간이니까요. 문제는 다른 이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뭉개는 행위입니다. 남이 적은 메모를 또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리거나, 떼거나, 심지어는 찢어 버리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겠죠.

 ◇토론하면 되는데 무섭게 왜 그래? 

서울 성동구 한양대 서울캠퍼스 인문대 건물에 13일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들어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게시에 대해서 항의하고 있다. 독자 제공
서울 성동구 한양대 서울캠퍼스 인문대 건물에 13일 중국 유학생들이 몰려들어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게시에 대해서 항의하고 있다. 독자 제공

급기야 홍콩 시위를 지지한다는 대자보를 가리려는 중국 유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려던 한국 학생들 사이에 물리적인 충돌마저 발생했습니다. 지난 11일 고려대에서 생긴 일인데요. 전날부터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연달아 훼손되자 훼손 장면을 증거로 남기려던 한 학생을 중국 유학생들이 둘러싸고 욕하며 위협했다는 겁니다. 중국 유학생과 한국 학생 간 대자보 쟁탈전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사태까지 온 거죠.

한양대에서는 지난 13일 중국 유학생 70여 명이 몰려와 레넌 벽에 오성홍기를 붙이며 홍콩 시위를 반대하는 단체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때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들과 대치했지만, 다행히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갈등은 여전합니다. 중국 SNS인 웨이보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의 얼굴과 실명 등이 공개되는 ‘신상털이’ 사례가 등장했고요. 일부 한국 학생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양대에서는 “중국 학생들이 던진 동전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사진과 글이 올라와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대자보 때문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누리꾼이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신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의 얼굴 사진을 사용하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지 며칠 뒤 이를 실천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남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된 이 사진에선 실제로 시진핑 주석과 마오쩌둥의 얼굴 사진을 배경으로 ‘프리 홍콩(Free Hongkong)’이라고 적힌 종이가 레넌 벽에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훼손되지 않은 채로 말이에요.

대자보와 현수막, 레넌 벽 훼손 사태가 끊이지 않자 한국 경찰도 수사에 나섰습니다. 학생모임은 19일 “레넌 벽은 수많은 시민이 모아주신 후원금과 서울대 학생들의 여러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며 “저희 모임 구성원에 대한 폭력과 위협, 허위 신고마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형사고소라는 강경책을 내놓게 됐다”고 밝혔고요. 다만 학생모임은 “대자보 훼손의 범인이 혹여 중국인 유학생으로 밝혀진다면, 반성문 작성을 조건으로 즉각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대학가에서 중국 혐오 정서가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국 대학생들 반응은 어때?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 한국인 대학생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노동자연대 연세대 모임' 소속 학생들이 홍콩 출신 재학생들과 함께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레넌 벽'을 설치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 한국인 대학생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노동자연대 연세대 모임' 소속 학생들이 홍콩 출신 재학생들과 함께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에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레넌 벽'을 설치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홍콩 민주화 시위를 두고 벌어진 대자보 갈등에 주한 중국대사관도 입장을 내놨습니다. 중국대사관은 15일 홈페이지에 담화문을 올리고 “일부 지역, 특히 개별 대학 캠퍼스에서 중국과 한국 청년 학생들의 감정 대립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는데요. 대변인은 “중국의 청년 학생들은 중국의 주권을 해치고 사실을 왜곡하는 언행에 분노와 반대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한국과 중국에서 공부하는 대다수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 사회의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와 한중 우호 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긍정적 기여를 하기를 희망한다”고도 전했습니다. 또 홍콩 시위에 대해선 “폭력을 중지시키고 혼란을 통제해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현재 홍콩의 가장 시급한 임무”라며 “우리는 또한 우호적인 이웃인 한국 민중이 이를 이해하고 지지하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죠.

중국대사관의 담화문에 학생모임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학생모임은 이날 긴급 성명을 내고 “주한중국대사관의 담화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각 대학교에 걸린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을 훼손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학생모임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라며 “건전한 비판과 토론이 오고 가는 대학가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는 그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레넌 벽이 뭐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새롭게 채색된 '레넌 벽' 앞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프라하=AP 뉴시스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새롭게 채색된 '레넌 벽' 앞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프라하=AP 뉴시스

낭만이 가득한 해외 여행지로 너도나도 손꼽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체코 프라하입니다. 이 프라하의 사진 명소 중 한 곳이 ‘레넌 벽’인데요. 196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영국 밴드 비틀스의 리드 보컬 존 레넌의 이름을 딴 벽입니다.

프라하에 있는 이 벽의 주인은 몰타공화국 대사관입니다. 오늘날 알록달록 개성 넘치는 그라피티로 가득한 이 벽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답니다. 체코가 공산정권이었던 시절, 반정부 시위대가 자유를 꿈꾸며 비틀스의 노랫말과 염원을 적은 게 시작이었죠. 몰타대사관 측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관대하게 용인했어요.

레넌 벽의 낙서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은 진행형입니다. 누군가가 몰래 흰색 스프레이로 낙서를 온통 지워두면 시민들이 바로 낙서를 했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레넌 벽은 매년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다고 하죠.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따뜻한 운동을 보여주는 벽인 셈입니다.

이런 레넌 벽이 한국에도 생겼습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에 연대하는 뜻으로 한국 대학생들이 국내 대학가 곳곳에 설치했어요. 하지만 중국 유학생들이 홍콩 시위에 반대하는 취지라며 이를 훼손해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죠.

체코의 레넌 벽 앞에서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담은 사진을 찍습니다. 니트 차림의 길거리 음악가들은 나른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요. “폭력을 반대한다”는 염원대로 한국의 레넌 벽에도 평화와 자유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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