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인사 전방위 접촉… 윤상현ㆍ이종구 등도 관저로 불러
강대국 총독처럼 전례없는 압박… 전문가 “트럼프가 지침 내린 듯”
해리 해리스(오른쪽) 주한 미국대사와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7일 국회 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을 만나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50억달러를 부담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양국 간 협상이 진행 중인데도 해리스 대사가 강대국 지위를 이용해 국회 인사들을 압박하는 게 마치 ‘총독 행세’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사 나누는 자리로 알고 (대사관저에) 가볍게 갔는데 서론도 없이 방위비 분담금 얘기를 했다”며 “50억달러라는 단어만 20번 정도 들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같은 날 기자들을 만나 “(해리스 대사가) 시종일관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쓰는 돈의 5분의1 금액밖에 한국이 내지 않았다’는 얘기만 했다”며 “제가 50억달러는 무리라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얘기도 꺼냈지만, 또다시 방위비 분담금 화제로 넘어갔다”고 부연했다. 이 의원은 “수십년간 많은 대사를 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해리스 대사의 태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의원은 이날 해리스 대사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 의원을 관저로 초청한 당시 해리스 대사는 여야 인사들을 전방위로 접촉했다. 6일에는 제임스 드하트 미측 방위비 분담 협상 대표 등과의 관저 만찬에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인 이종구 한국당 의원을 불렀고, 이튿날도 국방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과 드하트 대표의 만남을 주선했다. 세 자리에서 모두 미국 측은 한국의 분담금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현 의원은 본보에 “(해리스 대사는) 분담금뿐 아니라 지소미아 문제에 대해서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의 대화가 실망스러웠다는 식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분담금 협상 기간에 미 정부의 입장을 설파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국회 상임위원장이 불쾌하게 느낄 정도의 압력을 가한 적은 없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대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침에 따른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가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된 다음 단계인 협정안 비준 동의 권한만 가진 점을 감안하면, 여야 정당이 증액에 직접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기보다 국내에 강한 압박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여야 의원들은 미측 요구가 부당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20일부터 3박5일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방미하는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 측에 한미 동맹을 거래와 비용 구조로 폄훼하지 말고 가치동맹, 자유동맹 관점에서 볼 것을 주장하겠다”고 했다.

해리스 대사의 고자세는 종료가 임박한 한일 지소미아 관련 압박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면 한미 동맹에 악영향이 있냐’는 질문에 ‘한국을 방어하는 일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고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도 더 큰 위협에 놓이게 한다’는 8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당시 미 국무부 성명을 상기시키며 “국무부 성명을 바탕으로 판단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