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사)세종여성 정종미 대표는 "세종시의 정책에서 여성이 배제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내년 총선에 담아야 할 여성 이슈도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2년 공주사범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교생 실습을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 당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대학생이 돼 마주한 현실은 그 동안 알던 세상과 너무 달랐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판을 쳤고, 군부정권의 인권유린이 끝없이 자행되고 있었다. 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만행이 담긴 영상을 보고는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그때부터 선배, 후배들과 학습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탄탄대로가 펼쳐진 교사의 꿈을 내던지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그는 노동ㆍ통일 운동을 거쳐 50대가 된 지금 여성운동 현장을 뛰고 있다. 30년 넘게 사회변혁의 현장에 서 있는 그는 바로 ㈔세종여성 정종미(55) 대표다.

정 대표는 “국립사범대는 다른 대학보다 작은 행동에도 제약이 많았지만 침묵하고 회피할 수 없었다. 깨어 있는 선후배들과 그룹을 만들어 학습을 하고, 현장에서 투쟁했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다 보니 학업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급기야 교생실습도 못 나갔고, 졸업정원제까지 더해져 제적되고 말았다.

그는 “내친 김에 성남으로 올라가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1986년 성남공단 한일라켓에 위장 취업해 노조를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교육하는 등 노동운동을 하다 해고 당했다. 2년 뒤에는 대전 대화동 공단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을 보고 빈민운동을 시작해 10여년 간 이어갔다. 그는 “공동육아라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에 일종의 보육사업으로 엄마들과 탁아소를 운영하고,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 노동자 청년회도 만들어 활동했다”고 말했다.

2002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통일의 길’, ‘코리아 국제평화포럼’ 등의 단체에 가입해 통일운동을 했다.

그는 “북한 대표단이 한국에 오면 판문점에서부터 서울까지 한반도 깃발을 가로에 내걸고 환영행사를 하고, 대학생 통일기원 국토순례대행진 선발대가 서울에 도착하면 ‘통일비빔밥’을 만들어 통일을 염원하는 행사를 주관했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 비빔밥은 우리 민족이 비빔밥처럼 섞여서 하나가 되면 우리 민족이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교를 고교무상 급식 대상에서 제외하자 통일단체 회원들과 일본으로 건너가 차별철폐운동을 하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사)세종여성 정종미 대표는 지난해 3월 출범 이후 1년 6개월 동안 각종 행사를 추진하고, 세종시 여성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등 눈 코 뜰새 없이 보냈다.

세종에 정착한 후에도 그의 사회운동은 계속됐다. 2017년 ‘6월항쟁 30주년기념 시민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집행위원장을 맡아 정신 없이 행사를 치렀다. 행사 후에는 김준식 이사장과 함께 사단법인 ‘세종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를 조직했다. 4ㆍ19 민주혁명과 5ㆍ18 민주화운동, 6ㆍ10 민주항쟁 정신은 계속 지키고 또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그가 요즘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여성운동이다. 그는 지난해 3월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세종여성을 창립하고, 여성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세종여성은 수십 년 역사를 가진 지역 여성단체를 제외하고, 2012년 세종시 출범 이후 창립한 최초의 여성단체다.

그는 “지난해 7월 지역 여성 풀뿌리 NGO와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양성평등주간행사를 개최했다”며 “시정과 관련된 여성정책, 예산 모니터링 교육도 2개월 정도 진행하고, 여성장애인 이동권 등에 대한 모니터링도 했다”고 말했다.

인문주간에는 조치원역에서 페미니즘 도서전시, 시민강연, 페미니즘 영어원서를 읽는 페미수다, 영어 원서 번역, 페미니즘 스터디 등 소모임도 활발히 운영했다. 전국 단위 미투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세종시의 여성정책 종합계획 수립, 여성 대표성과 성 평등 제도 마련 과정 등에 비판ㆍ감시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년 6개월을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게 보냈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그는 “세종시에 아직 욕구조사 자료 등이 없어 단체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재정 자립도가 약하다 보니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여성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같다. 지난 1년 6개월은 단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활동하기보다는 이를 모색하는 시간이었다”며 “일단 내년 총선에 담아야 할 여성 이슈를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주ㆍ장애여성 등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해 나가며 분야와 영역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종=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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