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지난 41년간 지켜온 외교 노선을 뒤집어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유럽 및 중동의 동맹국들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NN,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본질적으로 불법이 아니다”라고 평가한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전임 행정부의 접근법을 뒤집고자 한다”며 “법적 논쟁의 여러 측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민간 정착촌 건설 자체는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레이건 대통령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곳에 정착촌을 확대해왔고, 현재 약 60만명의 이스라엘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는 지미 카터 행정부 때인 1978년 팔레스타인 영토에 정착촌을 건립하는 것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법률적 의견을 밝혔다. 이후 41년간 정부마다 온도 차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공식 입장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역대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지 못했고, 법률상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이 지역 평화 증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발표는 서안지구 정착촌의 예외적 현실을 인정한 것일 뿐, 미국 정부가 모든 정착촌의 법적 지위에 대한 공식 견해를 표명하거나 서안지구의 최종적 지위를 예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갑작스러운 ‘나 홀로 이스라엘 지지 선언’은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NYT는 이번 발표를 “트럼프 행정부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보낸 정치적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잇단 연정 붕괴로 일 년 사이 세 번째 총선을 치를 위기에 처한 네타냐후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유대인 정착민 대표기구 예샤위원회의 오데드 레비비 대변인도 이같이 해석하면서 “한편으론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유대인과 복음주의 기독교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현 시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팔레스타인과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정책 변경이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 모색)을 통한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팔레스타인 협상 대표인 사에브 에레카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법을 ‘힘이면 다 된다’는 정글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ㆍ안보 고위대표도 성명을 내고 “EU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에 모든 유대인 정착활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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