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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보루’ 이공대 포위한 홍콩경찰, 무차별 체포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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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보루’ 이공대 포위한 홍콩경찰, 무차별 체포작전

입력
2019.11.18 18:24
수정
2019.11.18 21:2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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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신임 청장 진압 수위 높일 듯… 법원은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

홍콩 이공대를 점거한 시위대가 18일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불이 붙은 바리케이드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이공대를 점거한 시위대가 18일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불이 붙은 바리케이드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18일 반정부 시위대가 점거한 ‘최후 보루’ 홍콩이공대(이하 이공대)를 포위해 고사(枯死) 작전에 돌입했다. 생필품이 떨어져 마지막 저항에 나선 이공대내 시위대 600여명은 ‘유서’를 쓴 강경파를 앞세워 화살, 투석기, 화염병, 가스통을 동원해 무차별 체포에 나선 경찰과 맞섰다. 시가전과 다름없는 경찰과 시위대의 ‘전투’가 이어진 홍콩이공대 주변엔 중국 인민해방군의 본격적인 투입을 우려하는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초강경파인 크리스 탕 신임 청장이 경찰 지휘봉을 맡게 되는 19일부터 시위대를 겨냥한 진압 수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홍콩 고등법원(우리의 대법원)이 이날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시위대가 다시 반격할 기회를 잡았다. 불안이 가시지 않자 정부는 14일부터 닷새째 지속된 초ㆍ중ㆍ고교 휴교령을 하루 더 연장했다. 중국 국방부는 “폭력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홍콩에서의 가장 급박한 임무”라며 개입 의지를 거듭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마지막 전선인 이공대를 옥죄면서 시위대 해산이 아닌 체포에 진압의 초점을 맞췄다. 시위대를 향해 학교를 떠나라고 촉구하면서도 실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붙잡아갔다. 이에 일부는 교정을 빠져나가려다 경찰이 고무총을 난사하며 체포에 나서자 다시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고 미국 APTN은 전했다. 구조를 마치고 나온 응급요원 20여명도 손이 뒤로 묶인 채 끌려갔다.

캠퍼스에 갇힌 시위대는 폭풍 진압에 나선 경찰과의 전선을 넓혀 시선을 분산시키려 애썼다. 이에 이공대 인근 침사추이에서는 체포된 여성을 구하려 경찰차를 포위해 벽돌을 던지며 맞섰다. 하지만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며 대응했고, 이 지역 일대에서 대대적인 소탕작전이 벌어져 100여명이 체포됐다. 이후 300여명의 시민은 “학생들을 구하자”고 외치며 이공대를 향해 거리로 나섰지만 무위에 그쳤다.

전날 장갑차가 불타고 화살과 화염병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던 이공대에서는 격렬한 충돌이 계속됐다. 오전부터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교내 진입을 시도하자, 시위대가 수십 개의 가스통을 던지며 맞서면서 학교 정문에서 큰 불이 났다. 최소 세 발의 총성도 들렸다. 오후에도 경찰은 시위대의 방어망을 뚫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 시위대 일부를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시설 상당수가 파손되고 폭발음이 들리면서 불길과 연기가 타올랐다. 시위대는 불길이 잡히면 경찰의 진입이 쉬워진다며 불을 키웠다. 이공대 캠퍼스 곳곳은 새벽부터 밤까지 타올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강경 시위대 절반은 교내에 남고, 나머지 절반은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경찰이 막아서는 통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며 “많은 학생들이 공포에 휩싸여 공황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공대 학생회도 “최소한 3명이 최루탄 등에 눈을 다치고 40여 명이 물대포에 맞아 심각한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인도적 지원을 촉구했다. 이에 이공대 총장과 야당 의원, 천주교 주교 등이 양측을 중재하려 나섰지만, 시위대는 경찰을 믿지 못하고 경찰은 “폭도들을 체포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캠퍼스 주변에선 학교에 갇힌 대학생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SCMP는 교내로 물품을 전하러 간 딸의 소식이 끊겼다며 울먹이는 어머니, “경찰이 이렇게 학생들을 핍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소리치는 부모의 심정을 전했다.

전쟁터나 다름 없는 이공대와 달리 홍콩 도심은 지난주에 비해 한결 안정을 되찾았다. 시위대의 방해로 일부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지만 교통대란은 없었고, 이공대와 인접한 크로스하버 터널과 부근의 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차량 통행이 정상을 회복했다. 다만 중국공상은행이 일부 지점 영업을 중단하고 친중 재벌이 운영하는 스타벅스 매장이 파손되는 등 시위대는 곳곳에서 중국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처럼 일부 시위대가 이공대에 고립됐지만 홍콩 법원은 시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고등법원은 야당 의원 25명이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실질적인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18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찰이 전가의 보도로 휘둘렀던 법을 무력화시킨 셈이다. 지난달 5일 복면금지법 시행 이후 경찰의 대처가 공세적으로 바뀌면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든 시위 참가자를 붙잡아갔고, 체포자가 급증해 지난 6월 이후 4,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반면 시위대는 불법집회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아니면 얼마든지 복면을 쓰고 거리로 나설 수 있게 됐다. 복면금지법이 계엄에 해당하는 긴급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만큼, 이번 위헌 결정으로 홍콩 정부가 향후 긴급법 발동에 주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위대의 숨통을 틔운 셈이다.

이에 중국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우첸(吳謙) 국방부 대변인은 18일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병사들은 시민들과 함께 길을 청소했고, 이들의 노력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홍콩 정부 요청 없이 중국군이 16일 병영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1만2,000여명의 주둔군 병력을 언제든 거리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의 마지막 한계선에 대한 도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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