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측이 절차적 하자가 있는 구조조정 규정을 이용해, 학과 폐지 결정을 하고 신입생을 뽑지 않은 뒤 일방적으로 해당 학과를 폐지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 5부(부장 박양준)는 경북 소재 A대학의 교수 이모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폐과ㆍ면직 처분 취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1997년 이 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된 후 2013년 정교수로 승진했다. 그러나 A대학은 2013년 이씨가 소속된 학과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뒤, 이듬해 이 학과를 없애는 내용으로 학칙을 개정했다. 이후 신입생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재학생들이 차례로 졸업하자, 결국 2017년에는 과에 학생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됐고, A대학은 이씨를 면직 처분했다.
대학 측은 2011년 제정된 ‘대학발전 구조조정에 관한 규정’을 학과 구조조정의 근거로 들었다. 이 규정에는 매년 4월 1일 기준으로 신입생 등록 인원이 모집정원의 70%에 미달하는 경우 다음 연도에 학과를 폐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폐과 절차가 시작되고 나서 모든 재학생이 졸업하면 그 절차가 종료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씨는 “이 구조조정 규정은 적법 절차에 따라 제정되지 않았다”며 “이 규정에 따른다 하더라도 다른 학과는 존속시키면서 문제의 학과만 폐지시킨 것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대학 측이 구조조정 규정을 제정하면서 공고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대학 구성원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았다”며 절차 하자를 인정했다. 또 “정당한 학과의 폐지는 적법 절차에 의해서 학과가 폐지되는 경우만으로 엄격히 한정해서 해석해야 한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어 “폐과 기준을 충족한 다른 과에 대해서는 학과 폐지를 유예하고, 이씨가 소속된 학과만 폐지한 것도 재량권의 남용이다”고 판단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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