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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11.20)

입력
2019.11.2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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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1935년 크렘린 궁에서 연설하는 리센코.
구소련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1935년 크렘린 궁에서 연설하는 리센코.

과학의 가치 중립ㆍ정치 중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구소련 농업생물학자 트로핌 리센코(Trofim D. Lysenko,1898.9.29~1976.11.20)가 있다. 그는 실험과학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며, 과학적 사실이 데이터가 아닌 권력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리센코는 우크라이나 볼타바(Poltava)라는 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등록금 낼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녔고, 집안 일을 거드느라 13세 무렵까지 글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영민했던 그는 혁명 후 어렵사리 볼타바 하급 농업학교와 키예프 농업전문학교(현 우크라이나 국립생명환경과학대학)를 거쳐 농업 육종 연구자가 됐고, 겨울에 파종하는 밀 종자를 춘화 처리를 통해 개량, 봄에도 파종해 수확할 수 있게 함으로써 30대 초반 이미 구소련의 일류 농화학자 바빌로프 등의 인정을 받는 학자가 됐다.

선을 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무렵부터였다. 그는 춘화 처리한 겨울밀의 2세대 종자는 별도로 춘화 처리를 하지 않아도 봄 파종용 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즉 유전자 변형 없이, 환경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거였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 이념, 즉 교육과 노동을 통한 공산주의형 인간 개조 이데올로기의 과학 버전이었다. 유전과학 진영의 비판과 리센코 자신의 잇단 실험 실패에도 불구, 스탈린은 1948년 10월 그의 획득형질 이론을 당 공식 이론으로, 소련 농업정책의 근간으로 채택했다.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과학자는 이제 당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과학자였다. 가히 한 세대, 수천 명의 소비에트 유전ㆍ생명과학자들이 숙청당해 일자리를 잃고, 가정을 잃고, 바빌로프를 포함한 다수는 노동수용소에서 목숨마저 잃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기아에 희생됐다. 소련과학아카데미 유전학 연구소장이던 그는 스탈린 사후 영향력을 잃고 65년 실각했다. 과학저술가 사이먼 잉스(Simon Ings)는 그를 권력의 도구였다고 썼다. “그는 권력의 장난감으로서의 역할을 즐겼고, 부서진 뒤 내버려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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