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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기억하라…극장가 찾아온 다큐멘터리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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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기억하라…극장가 찾아온 다큐멘터리 3편

입력
2019.11.16 15:38
수정
2019.11.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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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비춘 명품 다큐멘터리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10여년간 함께 싸우고 추적하고 기록한 카메라의 집념과 공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소규모 개봉이지만 비수기 극장가를 뜨거운 울분과 자긍심, 벅찬 감동으로 채우기에 충분하다.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삽질’. 엣나인필름 제공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삽질’. 엣나인필름 제공

◇단군 이래 최대ㆍ최악의 ‘삽질’

아름다운 모래톱으로 유명한 금강이 짙푸른 녹조로 뒤덮였다. 물고기 60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최하위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가 창궐했다. 축구공 크기에 젤리 같이 생긴 괴생물체 큰빗이끼벌레까지 등장했다. 모두 4대강 사업 이후 생긴 변화다. 강이 썩어가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은 4대강 사업의 실체를 고발하며 이명박 정부와 건설사, 전문가 집단이 어떻게 담합하고 이권을 나눠먹었는지 추적한다. 국가 예산 22조2000억원을 투입해 우리 사회가 배운 건 ‘물은 가두면 썩는다’는 당연한 상식뿐이었다는 사실이 마치 명치를 가격당한 듯한 충격을 안기며 공분을 자아낸다.

카메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당시 정부 관료와 정치인, 대가성 국책 연구 용역을 받은 학자 등 4대강 사업을 찬동한 인사들을 직접 찾아가서 ‘여전히 4대강 사업을 잘했다고 생각하는지’ 따져 묻는다. 그들은 모두 궤변을 늘어놓거나 황급히 도망가기에 바쁘다. 그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지금도 4대강 관리와 생태계 복원에 매년 수천억원대 국민 혈세가 쓰이고 있다. 영화는 힘주어 말한다.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제2, 제3의 4대강 사업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삽질’을 연출한 김병기 감독은 현직 기자로 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2006년부터 12년간 4대강의 진실을 끈질기게 파헤쳐 왔다. 스스로 ‘4대강 독립군’이라 부르는 현장 활동가들의 헌신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카메라의 추적 과정은 스릴러 영화처럼 긴박하고, 활동가들의 투쟁은 가슴 뜨거운 휴먼 드라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을 받았다. 14일부터 극장 상영 중.

상지대학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졸업’. 시네마달 제공
상지대학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졸업’. 시네마달 제공

◇‘졸업’ 빼앗긴 교정에도 봄은 오는가

‘민주화의 성지 상지대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상지대학이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손님 맞이를 위해 내거는 현수막 문구다. 한때 ‘사학 비리의 온상’이었던 상지대학은 이제 ‘사학 자치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 뒤에는 학생과 교직원들의 눈물 겨운 투쟁이 있었다.

평화롭던 교정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건 2009년, 과거 부정 입학과 공금 횡령 등 온갖 비리로 구속됐던 김문기 전 이사장과 그 일가가 재단 복귀를 시도하면서다. 학생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강의실을 뛰쳐나온다. 단식, 삭발, 농성, 집회, 수업 거부까지 상지대학 구성원들이 온 힘으로 저항했으나 결국 김 전 이사장은 2014년 총장으로 선임되고, 저항하는 학생과 교수들은 징계, 파면 당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상지대 사태는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하고 정권이 바뀌면서 비로소 해결되기 시작했다. 총장과 이사진이 물러나고, 지난해 총장 직선제를 통해 정대화 총장이 선출됐다. 10년간 총학생회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학원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과 교직원들의 저항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상지대 민주화 투쟁 기록은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으로 만들어져 7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0년 상지대 학생이었던 박주환 감독은 경찰들에 둘러싸인 채 울부짖는 동료 학생의 영상을 우연히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학생들의 투쟁을 기록하다 2012년에는 총학생회장이 돼 선두에서 투쟁을 이끌었고,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 카메라로 현장을 담았다. 상지대학의 투쟁은 희생과 연대, 정의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우며 한국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 수상작.

쿠바 한인 2세인 헤로니모 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인 이주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커넥트픽쳐스 제공
쿠바 한인 2세인 헤로니모 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인 이주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커넥트픽쳐스 제공

◇우리가 몰랐던 디아스포라의 삶 ‘헤로니모’

우연한 만남은 때로 운명이 된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이후 2015년 홀로 쿠바 여행을 떠난 재미동포 변호사 전후석은 공항에서 픽업 택시를 탔다가 한인 4세인 택시기사를 만난다. 다음날 택시기사의 가족 모임에 초대받은 전후석은 택시기사의 아버지 헤로니모 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미 최초로 대학에 입학한 한인으로 피델 카스트로와 아바나 법대 동문이었고, 쿠바 혁명 이후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정부에서 일했던 인물. 사진 속에서 혁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헤로니모 임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전후석은, 헤로니모 임으로부터 그의 아버지 임천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쿠바 한인사를 알리기로 마음먹는다.

1900년대 초 신문광고에 속아 한인 1,033명이 멕시코 에네켄(선인장) 농장으로 떠났다.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일하던 한인들은 한일합병으로 돌아갈 고국을 잃고 만다. 두 살 때 부모 품에 안겨 멕시코로 온 임천택은 이후 쿠바로 재이주해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면서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낸다. 헤로니모 임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쿠바 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혁명 성공 이후에는 산업부 차관까지 역임하며 훈장만 9개를 받았다. 은퇴한 뒤에는 흩어진 한인들을 찾아가 한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한글 학교를 세우는 등 한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든 전후석 감독은 1900년대 초 시작된 남미 이주사와 해외 동포들의 숨겨진 삶을 사진과 영상, 신문 보도, 증언 등을 통해 재구성한다. 임천택과 헤로니모 임, 그 후손의 역사는 ‘디아스포라’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이는 재미동포인 전 감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포개진다. 꼼꼼한 취재와 구성, 지루하지 않은 편집 등 만듦새도 돋보인다. 이제는 겉모습이 많이 달라진 한인 3세, 4세가 한국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면 벅차 오르는 감동을 주체하기 힘들어진다. 분열과 혐오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21일 개봉.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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