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고양 ‘식사떡방앗간’

[저작권 한국일보] 50년 넘게 전통의 방식대로 떡을 만들어온 경기 고양시의 식사떡방앗간. 13일 오전 장기덕 대표가 하얀 가래떡을 뽑아 찬물에 식히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방앗간에는 서민의 애환과 시대상이 담겨 있다. 1970~90년대 명절 앞이면 방앗간 앞은 늘 북적거렸다. 아낙네가 집에서 불린 생쌀을 바구니에 담아 방앗간 앞에서 길게 줄을 지어 떡 만들 차례를 기다리던 모습은 익숙했다. 이곳에서 어머니들은 김이 나는 하얀 가래떡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웠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아무리 처지가 어려워도 방앗간에 꼭 들러 쌀을 빻아 떡을 빚었다. 그 떡으로 차례를 지냈고 친지, 가족들이랑 나눠 먹었다. 말린 고추나 콩을 먹기 좋게 가루로 갈던 곳도 방앗간이었다. 그만큼 방앗간은 생활의 일부이자, 동네 사랑방으로 통했다.

그림 2 [저작권 한국일보] 13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식사떡방앗간에서 두 줄기 하얀 떡이 쭉쭉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13일 찾아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의 ‘식사떡방앗간’도 50년 넘게 서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곳이다. 1966년 9월, 당시 장이쁜(84)씨가 동네 이름을 따서 개업한 ‘동거리 방앗간’이 전신이다. 고양시에선 제법 알려졌지만 식사떡방앗간의 개업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손맛이 좋으니까 뭘 해도 잘 될 테니, 떡방앗간이라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주변 지인들의 권유가 식사떡방앗간의 창업 동기였다. 개업 초기, 손맛으로 무장한 식사떡방앗간이 다른 가게 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출범을 알린 식사떡방앗간은 2001년부터 조카인 장기덕(57)씨가 물려받은 이후, 간판을 바꿔 달고 현재까지 성업 중이다. 일산 신도시 도심과는 떨어진 골목에 자리한 곳이지만 반세기 이상 이어온 식사떡방앗간의 손맛은 이미 입소문을 탄 상태다.

오래된 기계로 쌀을 빻아 손으로 떡을 빚는 전통 방식은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이어온 식사떡방앗간의 고집이다. “30대 후반에 고모의 권유를 받아 시작하게 된 방앗간 운영이 벌써 18년째네요. 어린 시절부터 방앗간에서 떡을 만드는 고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운영도 맡게 된 것 같아요.” 장 대표가 전한 유년시절 추억에선 식사떡방앗간의 전통 방식이 그에게 흡수된 배경도 감지됐다. 식사떡방앗간이 53년 동안 한 곳에서 휴업도 없이 자리해 온 배경으로 보였다.

그림 3 [저작권 한국일보]찜기에서 갓 쪄낸 하얀색 시루떡. 박형기 인턴기자

방앗간 내부엔 지난 세월의 흔적도 역력했다. 쌀과 고추, 도토리 등을 빻는 9대의 기계에선 20년 이상 된 손때가 묻어났다. 장 대표는 방앗간 한쪽 벽면 찜기에서 흘러 나오는 뜨거운 김을 배경으로 시루떡 생산 공정도 소개했다. “최고 품질의 쌀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쫄깃한 식감을 위해선 강한 불에서 20분 정도 충분히 뜸을 들여야 합니다. 여기에 한번 뽑아낸 가래떡을 다시 한 번 기계에 넣어 뽑아내야 합니다. 떡이 더 쫄깃쫄깃해지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죠. 이것이 다른 가게와는 좀 다른 부분입니다.” 장 대표는 물론 최고 품질의 떡을 만들기 위해선 모든 과정에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식사떡방앗간의 이런 방침이 널리 퍼져서였을까. 이날 취재 중에도 손님은 밀려왔다. 김장용 고춧가루에서부터 이사 떡까지 손님들의 주문도 다양했다. 17년째 식사떡방앗간의 단골 고객이라고 전한 이모(70)씨는 “이 집 떡 맛이 좋아서 다른 가게는 가지 않고 이곳만 찾고 있다”며 “오랜 세월 다녀서 이제는 장 대표가 식구 같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식사떡방앗간의 또 다른 히트상품은 송편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추석 명절 때면 송편을 주문하기 위해 방앗간 밖으로 손님들이 50m가까이 길게 줄을 섰다. 지금도 추석 명절 때면 밀려드는 송편 주문량에 10여명의 임시 직원을 고용해야 할 정도다.

그림 4 [저작권 한국일보]경기 고양시 식사떡방앗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방아기계들. 족히 20년은 지난 기계들이다. 박형기 인턴기자

식사떡방앗간의 송편 경쟁력도 역시 정성에서 비롯된 듯했다. 생쌀을 빻아 가루를 낸 뒤 손으로 치 대서 만드는 날반죽으로만 빚어낸 게 식사떡방앗간 송편의 숨겨진 비밀이다. 날반죽으로 만들어내는 송편은 익반죽(쌀가루를 스팀에 쪄서 만드는 방식)에 비해 식감이 쫄깃하다. 송편에 들어가는 팥이나 깨 등도 장 대표가 직접 재료를 구해 찌거나 삶아서 만든다.

송편 맛의 생명인 ‘간’에도 기술은 들어간다. 식사떡방앗간에선 다른 가게처럼 계량적인 방법이 아닌 오랜 감과 손맛으로만 최적의 간을 뽑아낸다. 쌀 품종은 물론 묵은쌀과 햅쌀에 따라 간을 달리 하는 것도 식사떡방앗간만의 요령이다. “떡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자동화 기계와 경쟁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고객들이 옛날 떡을 더 좋아해서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옛날 방식으로 만든 떡을 찾고 있는 손님들도 꽤 있거든요.” 결국, 식사떡방앗간의 전통 방식 고수는 고객 맞춤형에서 비롯됐다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었다. 식사떡방앗간에선 송편 이외에 영양떡과 술떡, 바람떡, 절편, 시루떡 등 다양한 떡도 옛날 방식으로 내놓고 있다.

식사떡방앗간의 또 다른 경쟁력은 고객 관리에 있다. 실제 장 대표 휴대폰 내 저장된 단골 고객 전화번호만 800여개에 달했다. 새댁시절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한 60대 이상 단골 어르신이 주요 고객이다. 장 대표는 “나이 지긋한 70대 할머니들은 ‘나 살아 있을 때까지만 방앗간을 운영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하신다”고 단골 손님 자랑도 귀띔했다. 일산에 살다 단골이 된 뒤 서울로 이사를 가서도 명절 때면 어김없이 식사방앗간을 찾는 충성고객도 식사떡방앗간의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단골손님이 2대나 3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장기덕 식사떡방앗간 대표. 박형기 인턴기자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식사떡방앗간에도 예기치 못한 위기는 찾아왔다. 1990년대 초반 일산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단골이었던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쌀 농사를 지으면서 방앗간을 자주 찾던 농민들도 대부분 정든 고향을 떠났다. 식사떡방앗간의 핵심 경쟁력인 충성 고객이 이탈한 셈이었다. 신도시 조성과 함께 전통의 명맥을 이어오던 가계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던 과도기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 대표는 “일산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는 주민들이 지게나 손수레에 쌀을 담아 자주 오곤 했는데, 이후에는 그런 풍경들이 거의 사라졌다”며 “식사떡방앗간은 일산의 변화상과 함께 울고 웃으며 50년 세월을 견뎌낸 셈”이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토종 방앗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장 대표는 최근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고양에 토종 방앗간이 100여 곳이나 영업을 했지만 지금은 폐업하거나 떡집으로 전환하면서 30여 곳만 남아 있어요. 하나 둘 문을 닫는 방앗간을 보고 있으면, 전통이 밀려나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기계화나 프랜차이즈에 밀려난 전통 방식의 방앗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읽혔다.

하지만 장 대표는 50년 넘게 이어온 식사떡방앗간만의 전통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토종 방앗간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그 동안 식사떡방앗간이 충성 고객을 배신할 순 없다는 판단으로 보였다.

13일 장기덕 식사떡방앗간 대표가 생쌀을 찧어 직접 손으로 빚은 송편. 장 대표 제공

“최신식 기계를 들이면 품도 덜 들고 이윤도 더 많이 날 겁니다. 그래도 고객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힘 닿는 데까지 전통방식을 지키면서 떡방앗간을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그게 50년 넘게 고객에게 받아온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요.” 반세를 넘게 지켜온 식사떡방앗간의 경영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장 대표의 다짐에서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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