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단체는 “실효성 없다” 반발… 당국 “금융권 철저한 자기성찰을”
시중은행이 판매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 손실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내놓은 고위험 투자상품 규제 대책에 은행들이 당혹해 하고 있다. 저금리로 인한 수익 악화를 만회해준 ‘효자 상품’들이 자칫 판매 제한 대상에 묶일 수 있는 터라 불가피하게 내년 사업 전략의 긴급 수정을 검토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반면 소비자단체들은 상품을 규제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5일 은행권은 전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대책에 상품 판매 제한 등 예상치 못했던 조치가 포함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책엔 이른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하는 사모펀드와 신탁상품은 은행 판매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간 은행권에선 일부 은행에서 발생한 문제가 은행권 전반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는 건 과도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예금이자 수익이 낮은 상황에서 고위험-고수익을 원하는 고객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지만, 결과적으로 국회, 금융소비자단체 등의 고위험 상품 판매 제한 요구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난도 투자상품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영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당국은 고난도 상품의 조건으로 △원금 손실폭 20~30% 이상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파생상품 내재 등을 언급하며 추후 구체적 분류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날 금융위 브리핑에선 “상품의 고난도 여부는 기본적으로 금융사가 판단하되, 판단이 어렵다면 소비자 판정위원회를 구성해 상품구조, 기초자산 등을 검토한 뒤 고난도 여부를 가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왔다.
각 은행의 투자상품 개발ㆍ운용 담당부서는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특히 중위험ㆍ중수익 상품으로 은행권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는 주가연계펀드(ELF) 및 주가연계신탁(ELT)의 판매가 크게 위축될 걸 우려하고 있다. 이들 상품이 사모 방식으로도 활발히 팔리는 상황에서, 당국 규제가 사모펀드를 조준하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A은행 관계자는 “원금 20% 손실이 나지 않을 투자 상품을 발굴하는 게 쉽지 않다”며 “사모펀드 담당 직원들은 ‘소속 부서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투자상품 판매가 중단되면 은행 비이자수익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 사업 계획이나 목표도 수정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원, 금융정의연대 등 소비자단체들은 오히려 대책의 실효성에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고위험 투자상품의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없고 자의적 판단이 가능해 사실상 무의미한 대책”이라며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확실한 재발 방지책이 담겨 있지 않아 금융당국이 DLF 사태 재발 방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ㆍ손해보험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금융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간담회’를 주재하며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철저한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규제 시행 시) 소비자 선택권 제한과 사모펀드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도 있는 만큼 소비자와 시장을 만족시키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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