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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명망가 영입보단 인재 양성이다

입력
2019.11.15 18:00
수정
2019.11.15 18:2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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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 겨냥한 인재영입 경쟁 시동

명망가 영입만으로 정치발전 기대 난망

정당별 중장기 인재양성 시스템 갖춰야

자유한국당 황교안(맨 오른쪽) 대표와 나경원(맨 왼쪽)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참석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맨 오른쪽) 대표와 나경원(맨 왼쪽)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참석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여야 정당들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인물을 데려와 내세우느냐에 따라 당 전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내거나 외연 확장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선거 구도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 전국 단위의 큰 선거 때만 되면 각 분야 명망가들의 주가가 뛰는 이유다. ‘물갈이’를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다분하다.

최근 화제가 된 정의당의 이자스민 전 의원 영입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볼 만한 점이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그가 여의도에 입성한 것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 측 대선 플랜의 일환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 차에 연말 대선을 앞둔 박 전 대통령 측은 당명 변경(한나라당→새누리당)과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 등 보수색채 탈피에 주력했다. 다문화ㆍ이주노동자 전문가인 이 전 의원의 영입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4년 임기 내내 온갖 비난과 혐오에 시달렸고, 꼬박 2년을 준비했던 ‘이주아동의 권리보장 기본법’은 당내에서조차 찬밥 신세였을 만큼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도 거의 갖지 못했다. 소수자 권리나 인권 민감도에서 새누리당이 가장 보수적이었음을 감안하면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말처럼 “번지수 잘못 찾았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치무대에 등장했던 영입 인사들 중 성공 사례가 적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영입 대상자 선정 기준은 대체로 분야별 전문성과 대표성이지만, 주된 영입 통로가 지연ㆍ학연 위주의 인맥이다 보니 한계가 뚜렷하다. 19대 총선 때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난공불락이었던 경기 광명을에 대기업 법무팀을 이끌던 30대 후반의 여성 변호사를 영입했다. 법조계에서도 생소한 그를 두고 당시 한명숙 대표와 박영선 의원이 ‘내 사람’이라며 힘겨루기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전 ‘삭발 투사’로 나선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삼고초려까지 해가며 ‘영입인사 1호’로 내세우려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나 결과적으로 광고효과에만 소비된 이 전 의원 같은 사례도 부지기수다.

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여당 시절에는 영입 인재의 한 축이 고위관료 출신들이다. 4년마다 웬만큼 알려진 교수ㆍ법조인ㆍ언론인 등의 정계 진출 장면은 이제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정치의 특성상 군 출신 인사들도 각광받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연고지에 따라 소속 정당이 결정된다. 법조인의 경우 검사 출신이냐 아니냐도 주요 요인이다. 의정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정치개혁에 일조하는 드문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가 ‘직업 국회의원’의 길로 가는 게 현실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정치가 진작 바뀌었을 것이다.

‘조국 사태’ 이후 여야는 청년세대의 영입에 부쩍 공을 들이는 듯하다. 민주당에선 비례대표의 절반을 2030세대로 채우겠다고도 한다. 하지만 상징적으로 비례대표 한두 명을 세운 뒤 사실상 방치했던 행태가 이번엔 바뀔까.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비례대표로 영입하려는 청년들이 과연 세대 대표성을 갖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청년세대를 포함해 4년마다 반복되는 ‘명망가 영입 경쟁’은 정치를 바꾸려 노력한다는 시늉 이상이 아님을 누구보다 정치권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지탄받던 ‘정치꾼’들조차 영입이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숨어 자리를 보전해온 게 그간의 모습이다.

정치는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분야별 정책에 대한 이해도와 그에 따른 전문성, 대화와 토론을 통해 타협점을 찾아가는 정치력 등을 국회에서의 입법활동이나 각 정당 내 정치활동보다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체화할 수 있는 곳은, 단언컨대 없다. 당 사무처와 의원회관과 지방의회ㆍ지자체에서 땀 흘리는 이들을 훈련된 정책전문가이자 준비된 정치인으로 성장시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정치 발전의 요체다. 정치영역 외부의 수혈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몇몇 명망가 영입으로 생색낸다고 내년부터는 정치가 바뀔 거라 믿을 국민은 없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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