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여전한 현역, 국민배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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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안성기는 62년 동안 오직 영화에만 출연해 오며 한국영화의 얼굴이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바람 불어 좋은 날’(1980)로 힘을 얻은 안성기의 다음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1981)였다. 제작사 화천공사로부터 연출을 제안 받은 임 감독은 소설을 읽고서 수행에 정진하는 젊은 승려 법운 역을 맡을 배우로 안성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안성기로서는 아역 시절에 이미 라디오 드라마를 극화한 희극영화 ‘십자매 선생’(1964)으로 임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의 관계로 진지하게 합을 맞춘 건 사실상 이 작품이 시작이었다. 철저한 계산과 사전 준비하에 연기를 펼치는 배우 안성기의 성실함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때 안성기를 만났던 기억을 돌이키며 이장호 감독은 “어느 날인가부터 계속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기에 의아해서 물어봤더니, ‘맡은 구도승 역에 몰입하려 그런다’고 답해 놀랐다”고 한다. 배역을 위해 안성기는 삭발을 감행했고, 날밤을 새워가며 염불을 연습하는 등 열의를 갖고 임했다.

안성기가 임권택 감독과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영화 '만다라'.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본을 맡았던 송길한 작가는 촬영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순천에서 촬영할 때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나는 잠시 나왔는데 민박집 불이 그 늦은 밤에 환히 켜진 채로 있더라. 다가가 보니 고 곽지균 조감독과 두 배우가 밤을 새워 다음 촬영 장면 리허설을 하더라. 술이 확 깨던 순간이었다.”(서울아트시네마 시네토크 2011년 2월 20일)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걸로 하고, 그냥 가발 쓰지 말고 머리 깎은 걸로 가자“는 이장호 감독의 제안을 따라 ‘어둠의 자식들’(1981)의 기둥서방 역할을 받아들인 일로 임 감독으로부터 잠시 혼이 나긴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안성기는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생애 첫 수상했고, 이어서 임 감독과 ‘오염된 자식들’과 ‘안개마을’(1982)을 같이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임 감독과 연이 닿지 않았다. 재회는 12년이 지나서 조정래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태백산맥’(1994)의 출연 제안을 받으면서 이뤄졌다.

“일단 같이하게 돼서 굉장히 기뻤고, 여태까지 나를 왜 이렇게 버리셨지, 같이할 게 그렇게 없었나, 그런 생각도 했었고.(웃음)” 이때부터 임 감독의 영화에서 안성기는 사려 깊은 지식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태백산맥’의 김범구는 지주 출신이지만 각각 빨치산과 토벌대로 갈라진 염상진, 염범구 형제 사이에서 고뇌에 빠진 민족주의자이고, ‘축제’(1996)에선 치매를 앓은 어머니를 떠나 보낸 중년의 작가였으며,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임 감독에게 안긴 ‘취화선’(2002)에서는 장승업의 정신적 지주이자 개화파 학자인 김병문으로 분했다. 정성일 평론가와의 대화에서 임 감독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안성기씨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 생겨났을 때 그걸 해낼 수 있는 배우란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 인물과 만날 때가 있어요.” 배우 안성기에 대한 신뢰는 임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2014)에까지 지속된다.

영화 '고래 사냥'은 안성기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으며 배창호 감독을 흥행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로케로 화제가 됐던 영화 '깊고푸른밤'(1985). 한국일보 자료사진
 ◇콤비 배창호 감독과의 만남 

“이장호 감독이 말썽쟁이 막내형 같은 친근감이 있다면 배창호 감독은 같은 나이라서 친구 같은 편안함이 있습니다. 서로 작품을 해석하는 이해가 같고, 여러 면에서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물론 거기서 오는 안일함도 경계해야 하지만 말입니다.”(영화 월간지 로드쇼 1987년 7월호)

도시 빈민가의 삶을 멜로 드라마의 틀 안에 담아낸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을 리메이크한 ‘흑수선’(2001)에 이르기까지 배창호 감독의 중요한 작품에는 언제나 안성기가 함께했다. 조감독 시절 ‘바람 불어 좋은 날’의 배우 섭외를 위한 첫 만남에서 배 감독은 “무채색의 연기, 우수 어린 얼굴, 지성적인 이미지. 딱 보고 크게 될 배우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배 감독이 흥행사의 명성을 휘날리며 ‘한국영화의 스필버그’로 불리던 시기, 안성기는 그의 페르소나이자 친우였으며, 창작의 동반자였다. “배창호 감독하고는 진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장가가기 전까지는 일이 없어도 날마다 만났어요. 사귀는 사람처럼 매일 만났어요.(웃음) 그리고 영화 이야기만 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영화 얘기와 그다음에 할 영화 얘기를 끊임없이 했어요. 그러면서 여러 편 같이하다 보니까 겹쳐지지 않게 하자, 캐릭터라든가 그런 것들을 되풀이하는 걸 경계하자, 했어요.”(인터뷰 ‘배우 안성기에서 감독 임권택에로’ 2013년 6월 4일)

안성기는 ‘고래 사냥’(1984)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의상에서부터 거렁뱅이 청년 민우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낡아 해진 외투를 사서는 거기에 숟가락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쑤셔 넣을 주머니를 미리 꿰매는 등 준비를 갖추었고,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에서 순진무구한 청년 병태로 분할 때는 뇌성마비로 인한 장애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연습을 하느라 몸에 쥐가 나는 일도 겪는 등 늘 열심이었다.

안성기와 거듭 호흡을 맞추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배 감독은 “안성기씨의 이미지는 색깔로 치면 무채색이어서 감독이 입히고자 하는 색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편하다”고 답했다. 고정된 이미지로 소모되는 걸 바라지 않았던 배우의 입장에서 매번 변화를 시도하는 도전적인 작가 배창호는 연기의 외연을 넓히고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준 소중한 존재였다. 노동계몽영화 ‘철인들’(1982)의 용접공 동렬, ‘적도의 꽃’(1983)의 편집증적인 스토커 미스터 M, ‘고래 사냥’의 자유분방한 영혼 민우, ‘깊고 푸른 밤’(1985)에서 미국영주권을 얻고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백호빈, ‘황진이’(1986)의 갖바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에서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절절한 순애보의 주인공 영민 등등, 배 감독은 매 작품마다 안성기에게 다양한 역할을 맡기며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고자 했고, 이와 같은 협업을 통해서 안성기는 어리숙한 역할이든, 지적인 역할이든 특정 배역을 가리지 않는 천의 얼굴로 거듭났다. 13편을 함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출연료 문제로 다툰 적이 없었을 만큼 두터운 우정과 신뢰의 관계였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배우 신현준과 차승원은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 학창 시절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고서 안성기의 절절한 드라마 연기에 감동을 받아 배우를 지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신현준은 ‘태백산맥’ 촬영 때 같은 숙소를 쓰면서 안성기에게 직접 이 사실을 고백했고, 현장에서 안성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수첩에 기록할 정도로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 보였다고 한다.

태국에서 영화 '하얀전쟁' 촬영 중인 안성기(맨 오른쪽).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중훈과 코믹 연기를 선보인 '투캅스'(1993).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인정사정 볼것 없다'에서 살인자역을 맡아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끝나지 않는 전성기 

그 외에도 안성기는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1985), 이두용 감독의 ‘내시’(1986),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1986), 박광수 감독의 데뷔작이자 영원한 콤비 박중훈과의 공연이 시작된 ‘칠수와 만수’(1988), 배 감독의 조감독이던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8), ‘조미료 전쟁’을 풍자한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 등 오늘날에도 손꼽히는 1980년대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에 얼굴을 내밀며 당대의 한국영화계를 자신의 무지갯빛 색깔로 온전히 물들였다. 80년대는 그야말로 안성기의, 안성기에 의한, 안성기를 위한 시대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안성기의 연기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피아골’(1955) 이래 처음으로 빨치산을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 베트남전 후유증을 겪는 인간 군상을 그린 ‘하얀 전쟁’(1992) 같은 작가성 짙은 작품에 진중한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1993)에서 박중훈과 호흡을 맞춰 부패한 선배 경찰을 코믹한 톤으로 소화해내며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위상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는 온화한 빛을 지우고 살인청부업자로 분하는 이례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해 큰 호평을 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출연 빈도와 비중은 줄었지만 ‘국민배우’ 안성기의 존재감은 퇴색되지 않았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강우석 감독의 1,000만 영화 ‘실미도’(2003)에 최재현 준위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으며, 박중훈과의 파트너십이 정점에 달한 ‘라디오 스타’(2006), 20년 만에 정지영 감독과 재회한 실화 소재 영화 ‘부러진 화살’(2011)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침체되지 않는 안정적인 연기력을 뽐냈다.

데뷔 이래 62년. 안성기의 존재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또 하나의 한국영화사이다. 그리고 이 영화사에는 아직 채워야 할 여백이 남아 있다. 앞으로 더해질 안성기란 책자의 또 다른 페이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조재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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