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시내 거리에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차량과 택시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택시에 대해선 다들 나쁜 추억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승차 거부, 불친절, 바가지 요금, 원치 않는 인생 상담에 정치 평론. 그나마 남성이니 이 정도지, 여성들은 공포마저 느끼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한다. 이러니 유사 택시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어제는 ‘우버’가 있었고, 오늘은 ‘타다’가 있다.

타다의 서비스 방식은 콜택시와 거의 같다. 다만 기존 택시 서비스에서 느꼈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장치가 도입되었다. 타다는 승차 거부를 피하기 위해 승객이 탑승하는 순간까지 기사가 목적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으며, 기사 또한 심층 인터뷰와 운전 테스트, 매월 종합평가 등을 통해 꾸준히 관리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타다 기사는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경우 외에는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러나 타다는 자신들이 택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타다는 차를 빌려 주고 그 차를 몰 운전기사를 알선해 주는 특이한 형태로 운용된다. ‘택시가 아니기 위해서’다. 사실 이것도 원칙적으론 금지되어 있지만, 예외적으로 알선이 허용되는 11인승 승합차를 운용함으로써 회피했다. 다만 이 예외조항은 단체관광 등 임차인이 직접 차량을 운전하기 힘든 경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불법 논란이 잦아든 건 아니다. 실제 검찰은 타다가 면허 없이 사실상 택시를 운영했다고 판단,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어떤 사람들은 타다 기소에 현대판 붉은 깃발법이란 꼬리표를 붙이고, 구시대의 규제가 신사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꼴이라고 비판한다. 우버ㆍ그랩 등 혁신적인 공유경제 모델이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이를 가로막으려 해 봐야 우리 산업, 우리 경제의 경쟁력만 약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타다는 좋은 서비스다. 가장 좋은 점은 기사로부터 받는 불쾌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혁신인가? 온갖 수를 써도 고쳐지지 않았던 만성적인 결함이 고쳐졌다면, 충분히 혁신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경우엔 불친절이 곧 그 결함이다.

하지만 이면을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타다의 고용형태는 소수의 파견노동자를 제외한 대다수가 프리랜서로 이루어져 있다. 프리랜서에겐 4대보험도, 퇴직금도, 연장근로수당도 없다. 갑자기 일이 끊겨도, 즉 사실상 해고를 당해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하지만 기사들은 근무시간을 준수해야 하고, 앱에서 지시받은 바에 따라 승객을 탑승시켜야 한다. 심지어 타다는 심층 인터뷰, 매월 종합평가 등을 통해 기사를 사실상 고용하고 관리한다. 그게 타다 기사를 친절하게 만드는, 말하자면 타다 혁신의 핵심이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허울 뒤에 노동 안전망을 잃은, 사용자의 얼굴이 가려진 사실상의 간접고용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혁신의 민낯이라면, 우리는 그래도 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그 혁신을 응원해야 할까.

또한 타다가 문제가 된 까닭은 그들이 친절해서 택시를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상의 택시 영업을 면허 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법을 바꾸는 게 옳다. 물론 그 부작용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타다 또한 택시 면허를 확보해서 사업을 하면 된다. 카카오모빌리티 등 경쟁 업체는 다양한 플랫폼 택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실제로 택시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이들은 혁신에 반하는 기업이라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일까.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 영업을 언제부터 혁신이라 불렀나.

택시에 대해선 다들 나쁜 추억들이 있다. 바꿔야 할 문화가 있고 규제도 있다. 그러나 혁신은 좋은 것이고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셈법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 혁신이란 이름표는 누가 붙여준 것인가. 혁신이라는 외피 안에 담긴 진짜 민낯을 들여다봐야 한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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