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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에 대해 묻다] 돼지피로 물든 강물… 조금 덜 먹더라도 ‘공장식 축산’ 줄여야

입력
2019.11.15 15:00
수정
2019.11.15 17:4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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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오른쪽 두번째)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2019 국회 우리 한돈 사랑 캠페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오른쪽 두번째) 국회의장이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2019 국회 우리 한돈 사랑 캠페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빨갛게 핏빛으로 물든 하천의 사진이 연일 언론을 달궜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해 겹겹이 쌓아둔 돼지 사체가 터지면서 핏물이 인근 강물에 스며든 것이다. 주민들은 악취 피해에 수돗물도 안심하고 못 쓰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서두르다 보니 긴급행동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이러니 의식이 소실된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살처분 원칙이 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놀라울 것이 없다. 지난 9월 언론에서도 의식이 있는 채로 발버둥치는 돼지를 포크레인으로 묻는 사례가 보도됐다. 동물의 고통뿐 아니라 살처분에 투입되는 공무원과 노동자의 심리적 외상 역시 구제역 때부터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농장동물의 숫자는 소폭 증가했지만 사육호수의 숫자는 급감했다. 대부분의 동물이 대규모 농장에서 사육된다는 이야기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 원인이 공장식 사육환경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몸 돌릴 곳도 없이 빽빽이 기르는 밀집사육 환경에서는 어떤 병이든 빠르게 전파된다. 가뜩이나 좁은 나라에서, ‘1일 1닭’, ‘무한리필’처럼 싼 가격에 많이 팔리고 먹히면 ‘착한 고기’가 되는 소비문화에 발을 맞추려면 동물에게 허용되는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선거 때마다 각 후보와 정당들은 거의 한 번도 빠짐없이 ‘공장식 축산을 친환경 복지축산으로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변화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2012년부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8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시행한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의하면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한 시민이 75% 이상이었다. 농장주들이 투자비용과 수익 저하에 대한 부담으로 진입을 주저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양돈농가 피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돼지 사체 때문에 강이 피바다가 되는데도 시민들에게 “걱정 말고 많이 먹으라”고만 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가 아쉽다. 과연 우리가 지금 동물을 기르고 먹는 속도와 방법이 지속가능한 수준인지 성찰하고, 정부가 나서서 축산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함께 나와야 할 것이다.

가축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는 변화가 아닌 ‘위기’로 표현되는 기후변화의 위협에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을 접목한 ’푸드테크‘는 이제 국제적 키워드가 되었고 우리나라 기업도 대체육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공기관에서 1주일에 하루는 채식 급식을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벼운 지갑에, 공장식 축산을 줄여서 축산물 가격이 오르면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덜 먹더라도 지금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사회적 부담을 함께 나눠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농장 환경이 개선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물이 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외면하면서 건강하기까지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지 않은가. 아무리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도살당할 운명이라 해도, 살아있는 동물 수만 마리를 땅에 묻는 것에 무감각해진 사회에서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여기는 인식이 자리잡기는 어렵다. 사람과 동물과 환경의 건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 헬스(One Health)’ 개념이 단지 구호나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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