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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소년병들 AK47 소총 들고 전쟁터로... 눈 꼭 감은 트럼프

입력
2019.11.14 2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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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지난해 8월 남수단 얌비오 외곽에서 소년병들이 AK47 소총을 든 채 해단식에 참석해 있다. 얌비오=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8월 남수단 얌비오 외곽에서 소년병들이 AK47 소총을 든 채 해단식에 참석해 있다. 얌비오=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꿈을 꿀 때마다 내가 그때 죽인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요.”

11세 때 무장 단체에 납치돼 그 적군의 스파이 활동을 해야 했던 남수단의 한 소년은 무장 단체에서 벗어난 지 6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한 군인이 자신의 집안일을 거부하는 다른 소년병(Child Soldier)을 죽이는 걸 보고 겁에 질렸던 그는 어쩔 수 없이 방화로 일가족을 해치는 일에 가담해야 했다.

지난달 말 AP통신은 “소년병 신분에서 벗어난 남수단 아이들이 사회 재적응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며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ㆍ유니세프)이 지난 2월 극적으로 석방시킨 남수단의 정부군과 반군 소년병 121명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통신은 남수단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인 1만 9,000여명의 소년병이 있다는 유엔 통계를 밝히며 지난해 9월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이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이후 소년병 모집 비율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 중 많은 경우 낙인이 두려워 주변에 말하지 못하는 데다, 종종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과거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 무기는 성능이 막강해지는 동시에 다루기 용이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도의 훈련 없이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전의 땅 아프리카의 해묵은 비극적 문제인 소년병의 참전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자동화된 무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구시대의 병폐인 소년병이 늘어난다는 아이러니이다.

소년병의 무장 해제, 징집 해제, 사회 재적응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는 유니세프는 정규 또는 비정규 무장 단체의 일원인 18세 미만 남녀를 소년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소년병은 세계 아동 인권 문제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30만명 이상의 소년병이 현재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은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를 2002년 2월 12일 발효해 18세 미만 징집을 금지하고 있다. 의정서 가입국은 강제 징집의 경우에도 18세 미만을 징병할 수 없다. 하지만 ‘소년병반대국제연합(Child Soldiers International)’에 따르면 50개 국가가 여전히 어린이들의 군입대를 허용할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무장 단체들도 아이들을 모집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매년 어린이 보호에 실패한 국가 목록을 ‘이름과 수치심(name and shame)’이라는 제목 하에 공개한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특히 지난 2017년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소말리아, 남수단, 수단, 시리아, 예멘의 무장 세력이 무력 충돌에 18세 미만을 모집해 이용한다고 적시했다.

◇소년병의 상징이 된 AK47

외신에 자주 등장하는 소년병의 대표 이미지는 몸집 만한 총을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적개심을 품도록 세뇌돼 하루아침에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돼 버리는 이들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같은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AK47 자동소총이다. 무게 약 3㎏의 AK47 소총은 누구나 쉽게 조작법을 익힐 수 있고 강추위나 더위 속에서 습기나 모래 등 이물질이 들어가도 작동에 무리가 없는 게 특징이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소년병들의 무기로 주로 쓰이는 이유다. 한 자루 가격이 닭 한 마리 가격에 거래된다고 해서 ‘치킨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즈니스위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래리 캐허너는 저서 ‘AK47’에서 “미군이 우주 시대의 무기와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도 AK47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1947년에 공식 병기로 채택돼 AK47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소총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무기’로 등재돼 있다.

캐허너에 따르면 AK47은 등장 이래 750만정이 누적 생산됐고, 개량종까지 포함하면 최대 1억정이 지구상에 유통돼 왔다. AK47이 늘어갈수록 세계의 신음도 늘었다. 그는 AK47이 “지뢰와 달리 운송과 수리가 쉽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공격자 집단이 사용하기 쉽다”며 “AK47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중동에서 테러 공격이 벌어졌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행 강도가 빈발했다”고 적었다.

무엇보다 AK47은 냉전시대의 파괴적인 유산이다. 러시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AK47은 옛 소련군의 제식 소총으로 채택됐다. 미국과 냉전 중이던 소련은 특허를 주장하지 않고 동구권에 AK47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와 중남미 게릴라 손에도 AK47이 쥐어졌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트럼프의 무관심

소년병은 총기를 다루는 전투병뿐 아니라 요리사와 운반병, 연락병 또는 성적 목적으로 이용당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소년병 중 여성 아동의 비율이 40%나 된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소년병을 중대한 아동 인권 침해 행위로 보고 국제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무장 단체와 대화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버지니아 감바 유엔 전시아동보호(CAAC) 특별대표는 지난 7월 1일 쿠르드군이 이끄는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압디 사령관과 18세 미만 아동 징집 금지 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감바 특별대표는 이 협약을 “진전의 시작”인 동시에 “중요한 날”이라고 묘사했다. SDF의 영향권에 있는 어떤 단체도 아동을 이용하고 징집하지 않도록 하는 중대한 약속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2003년 1월 소년병의 사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1460호 결의안을 지키기 위한 행동 계획이라는 게 감바 특별대표의 설명이다. 유엔은 코피 아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 23개국에서 소년병 징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직후 안보리 만장일치로 이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은 제재 규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법제화를 통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년병 확산 예방 노력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아동신분보호법(CSPA)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매년 미 국무장관은 자국 군대나 정부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가 소년병을 모집하거나 사용하는 국가의 명단을 발표한다. 이 목록에 포함되는 국가는 미군 지원과 훈련, 방어 장비 등 특정 유형의 군사 원조를 받을 수 없다.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콩고민주공화국, 이란, 이라크, 말리, 소말리아, 남수단, 수단, 시리아, 예멘 등이 포함됐다.

다만 문제는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며 동맹군 쿠르드족을 터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미국 고립주의’가 소년병 문제에도 적용되는 점이다. 지난 4일 미 의회전문매체 힐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며 올해 국무부가 발표한 11개국 중 7개국에 대한 CSPA 금지 조치가 철회된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모든 CSPA 금지 조치를 철회해 7개 국가가 군사 원조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매체는 더욱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아라비아가 14세가량의 어린 아이들을 전쟁에 이용하는 사실이 널리 보도되고 있는데도 사우디를 CSPA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국무부 전문가들은 사우디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으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의해 기각됐다”고 전했다. 매체는 “CSPA 금지가 철회되지 않은 이란, 미얀마, 수단, 시리아 4개국에서는 소년병 채용 문제에서 약간의 진전이 이뤄졌다”면서 “앞서 유엔 조사관들이 소년병 징집이 늘고 있다고 결정한 남수단에 대한 CSPA 금지를 철회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이 특히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결의안 채택 외에도 국제사회는 18세 미만 징집을 금지한 의정서가 발효된 2월 12일을 ‘세계 소년병 반대의 날’로 지정하는 등 캠페인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소년병을 풀어주는 협약을 맺고 이들의 사회 재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니세프를 비롯한 비영리단체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AP통신은 “유니세프가 소년병의 사회 재적응을 돕는 데 향후 2년간 500만달러가 필요하지만 현재 운용 가능한 예산은 5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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