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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도청 떠난 빈 도심에 보석같은 카페 100여개… 문화 어우러진 ‘동리단길’

입력
2019.11.15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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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 전경 1./2019-11-14(한국일보)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 전경 1./2019-11-14(한국일보)

“100여개의 보석 같은 카페가 곳곳에 숨어있다고 보면 돼요.”

13일 오후 광주 동구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만난 직장인 이용환(55)씨는 “동명동 카페거리의 특징은 700원짜리부터 5,000원짜리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골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활기가 넘쳐 점심 후 40여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사무실에 간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명동 카페거리는 전국에 가장 잘 알려진 지역의 명소다.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100여개 카페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유기농 차를 즐길 수 있는 전통찻집, 다양한 책을 준비한 북카페, 직접 원두를 볶아서 판매하는 로스팅 카페,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갤러리 카페 등 다양한 이색카페가 즐비하다. 대부분의 카페는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로 각각의 개성 있는 공간 연출이 특징이다.

오래된 한옥이 원래 모습을 유지한 채 카페로 변신하는가 하면 이층 양옥집의 담장을 허물고 정원을 살려 음식점으로 변한 곳도 있다. 기존 상가를 고쳐 카페로 꾸미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반 주택의 창고나 자투리 땅을 이용, 두 세평 남짓한 카페로 변신한 경우도 많다. 카페거리 곳곳에는 자신만의 색을 입힌 보석 같은 작은 카페들이 숨어 있었다.

황톳길, 맷차, 몰래식당, 하늘아래서, 동명72, 푸케, 그믐주, 시골집, 바람개비식당, 혜윰, 하루 등 개성이 강한 가계이다 보니 이름도 다양하고 정겹다.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에 있는 멕시코음식 전문점. /2019-11-14(한국일보)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에 있는 멕시코음식 전문점. /2019-11-14(한국일보)

카페거리에는 커피와 전통차 등을 마시는 카페 외에 멕시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도 많다.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오자 자연스럽게 옷가게와 미용실, 귀금속 판매점 등도 가끔 눈에 띄었다. 이들 가게의 특징은 기존의 상가와 다르게 과도한 간판이 없다는 것. 일반 상가는 건물 밖에 대형 입간판을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곳 상점들은 가게 이름을 알리는 정도의 간단한 간판만 설치해 거리는 한결 산뜻해 보였다.

대학생 정명옥(23)씨는 “이곳 가게 고객은 대부분 SNS 등을 통해 사전에 구입물품과 장소 등을 알고 오기 때문에 굳이 대형 간판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가게를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답했다.

학원가에서 카페거리로 변신

동명동 카페거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학원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전남도청이 전남 무안으로 이전 한 뒤 그 부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이 건립되면서 그 일대에 있던 어학 및 입시 학원들이 동명동 일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도심공동화 지역으로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서 많은 부담 없이 학원 건물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의 대표적인 한옥 주택가로 유흥업소가 없어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었기에 하나 둘씩 학원이 생겨 났고, ‘학원의 메카’라는 별명도 얻었다. 유명 학원가로 소문이 나자 광주는 물론 전남 영광이나 순천 등지에서 학생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학원과 집이 멀리 떨어진 곳이다 보니 학부모들이 직접 운전해서 아이들을 데려 온 경우가 많았다. 보통 아이들 수업 시간이 세 시간 정도이다 보니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학원 근처에 승용차를 주차해 놓고 기다렸다. 학부모들이 몇 시간을 차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처에 있는 카페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카페는 학부모들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휴식처이자 입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였다. 카페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자, 현재 동계천로를 따라 하나 둘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더러는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해 직접 카페를 열기도 했다. 처음에는 학원가가 형성된 동계천로를 따라 카페들이 생기기 시작해 현재는 동명동은 물론 장동, 서석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가장 오랜된 카페 '하늘 아래서' 7/2019-11-14(한국일보)
광주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가장 오랜된 카페 '하늘 아래서' 7/2019-11-14(한국일보)

동명동 카페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는 ‘하늘 아래서’가 꼽힌다. 2000년 ‘햇살 고운 집’으로 시작해 2005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작고 아담하면서도 유리창이 반원형으로 되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유리창 안팎으로 화사한 화분을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만난 동네 주민 송성길(63)씨는 “4, 5년 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게가 생겨 카페거리가 조성됐는데 요즘은 술집들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자칫 이미지를 흐릴까 우려된다”며 “오래된 주택가여서 골목이 좁은 데다 서석초등학교 주변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주차문제가 가장 골치 아프다”고 애로를 털어놓았다.

그는 평일은 인근 대형 교회 주차장이 개방돼 어느 정도 주차난이 해소되지만 주말과 일요일엔 주차장 부족으로 몸살을 앓는다고 덧붙였다.

카페거리 주변에는 옛 철도 폐선 부지에 푸른길이 조성돼 산책을 즐길 수도 있고, 개교 123년을 맞은 서석초교와 1925년 전남사범학교 터에 들어선 광주중앙도서관, 옛 금호문화재단, 광주의 첫 호텔인 동명호텔 옛터 등이 있어 광주의 근ㆍ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동명동 골목은 서울의 경리단길에 빗대 ‘동리단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명동은 옛날 광주읍성의 서동문 밖에 있는 마을로 ‘동문외리’ ‘동밖에’라는 이름을 불리던 곳이다. 무등산 자락에서 내려온 동계천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 있는데 유력 인사들의 관사가 있던 윗마을이 지금의 동명동 카페거리다.

광주 동구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호남의 정치 1번지’로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동명동은 1970~90년대 동계천 일대 고급 주택과 오래된 한옥들이 많은 부자 동네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전남도청이 이전하고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인구가 크게 줄어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전남도청 이전 부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건립되면서 차츰 활력을 되찾아 이제는 명실공히 아시아의 문화수도로 거듭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문화전당이 개관하면서 동구는 옛 영화를 찾는 계기를 마련했고 동명동 카페거리가 조성되면서 관광객 유치 등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문화전과 동명동 카페거리는 그만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광주시는 문화전당과 동명동 카페거리를 연계해 ‘광주다움’을 담은 문화마을로 조성하기로 하고 현재 용역을 추진 중이다. 시는 동명동 일대 골목길과 주택, 카페거리를 중심으로 광주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발굴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등이 많은 오감체험마을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부지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2019-11-14(한국일보)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부지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2019-11-14(한국일보)

아시아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발전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명동 카페거리를 뒤로 하고 장동로터리 쪽으로 빠져나오면 문화전당과 이어진다.

문화전당은 2004년부터 시작된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광주’ 조성 사업의 핵심 시설이다. 5ㆍ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공간인 옛 전남도청 일대에 건립된 문화전당은 2015년 11월 공식 개관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시설인 문화전당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 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형식의 대형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전당은 아시아의 창조적 문화ㆍ예술 콘텐츠를 생산하고 연구ㆍ유통시키는 한편, 아시아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아시아문화 교류ㆍ창작발전소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전당에서는 공연 전시 체험 교육 창ㆍ제작 등 다양한 장르의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는 물론 한ㆍ아시아 문화장관회의 등 수 많은 국제 행사가 진행됐다. 이로 인해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전당은 지상에 우뚝 솟은 다른 복합문화시설과는 달리 지하 20m 깊이에 자리를 잡았다. 옛 전남도청 등 보존 건물을 제외한 신축 건물은 모두 지하에 있다. 건축물 전체 면적은 16만1,237㎡로 국내 문화기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공연이 가능한 야외광장, 옥상정원, 지하주차장 등을 갖추고 있다. 공연장 외에도 도서관, 어린이문화원, 창ㆍ제작센터 등이 들어섰다.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옥상에 조성된 하늘마당 전경. 2019-11-14(한국일보)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옥상에 조성된 하늘마당 전경. 2019-11-14(한국일보)

이 건축물 특징은 지하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곳곳에 70여개의 천창이라는 빛의 통로를 설치해 낮 시간대에는 자연의 빛을 받아들이고, 밤에는 건물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을 지상으로 발산시켜 ‘빛의 숲’을 이룬다. 지상 부분은 도심공원과 열린광장으로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늘공원은 젊은 연인들에게 추억을 남기는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문화전당은 너른 뜰과 아름다운 길이 조성돼 젊은이들의 천국이다. 광주프린지페스티벌 등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연중 계속 열리고, 밤에는 청소년들의 버스킹 장소로, 만남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문화전당과 동명동 카페거리 일대를 광주만의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있는 문화마을로 조성해 국내외 방문객들이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명실공히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다운 문화 향유 공간으로 가꿔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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