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6>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니키 드 생 팔의 작품 ‘미의 세 여신(The Three Graces)’은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지닌 세 여성이 밝은 채도의 옷을 입은 채 춤을 추는 조각상이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유쾌해지는 이 조각상에는 그리스 여신상과 같은 엄숙함이나 우아함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어린아이처럼 생동하는 기운으로 뛰어오르는 중이다. 그런데 이 활력은 세 명의 여성들이 모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명 이상이 모였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연대의 꿈을 꾸거나 서로 분쟁을 겪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여성 간의 연대와 그 불가능성 사이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는 2010년대에 가장 첨예하게 접속하고 응답하는 소설집이다.

소설집을 따라 읽다 보면, 2010년대의 뜨거웠던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이웃의 선한 사람’은 세월호 참사 이후 동감과 연민의 방향에 대해 돌아보게 하고, ‘작은마음동호회’는 2016년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소외되었던 엄마들을 상기시킨다. 편집장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괴로워서 퇴사했다는 여자 후배의 이메일로 시작되는 ‘피클’은 아는 사람일 때 훨씬 어려워지는 연대의 문제를 다루며 미투(#MeToo) 운동을 깊이 들여다본다. 일하는 싱글맘과 아이를 원하는 레즈비언이 마주하는 ‘승혜와 미오’, 성전환수술을 받은 동생과 암 투병으로 죽은 엄마 사이에서 젊지 않은 자신의 나이를 체감하는 ‘마흔셋’ 역시 성소수자들 간의 차이와 각기 느끼는 박탈감에 대해 민감하게 포착해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적 사건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시선의 중심에 ‘아이를 키우는 기혼 여성’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로 시작된 프레임 속에서 청춘들을 조명하고 소비해온 지난 십여 년 동안 배제되어왔던 목소리는 ‘82년생 김지영’의 물결과 함께 다시 한국문학장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아줌마’라 비하되고 ‘맘충’이라 내쫓겼던 이 기혼여성들은 이제 ‘정치적 주체’이자, ‘퀴어적 주체’로서 다시 역사에 기입되고 있다.

촛불집회와 함께 시작된 혁명은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수자의 싸움이 더 어려운 이유가 있다면,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그 무겁고 무섭고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겠다. ‘작은마음동호회’를 읽어나가다 보면 알게 된다. 긴 시간이 걸리는 싸움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보다, 옹졸하고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힘겹게 시작된 연대 안에서도 자기검열은 계속되며, 우리는 종종 싸움의 대상을 잊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곤 한다는 것을. 하지만 작가는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 역시 알려준다. 지금 윤이형은 광장 한 복판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끝낼 수 없다”(‘역사’)고 나직하게 말하며 서있다. 그의 글 아래서라면 우리는 서로 칼을 겨눈 채로도 계속 함께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의 세 여신’들처럼 경쾌하게.

강지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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