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리더십 위기를 맞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가장 몸값이 치솟았던 때는 2014년 정계 은퇴 선언 후 전남 강진에서 토굴 생활을 할 무렵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일 당권 주자들이 찾아와 ‘손(孫)전성시’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막상 정계 복귀 뒤의 손 대표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했다. 요즘 해외 체류 중인 안철수 전 의원의 주가가 치솟는 장면은 손 대표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안철수가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3위를 달리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 내년 총선을 겨냥한 보수 통합 논의의 중심에는 ‘안철수 변수’가 있다. ‘보수 통합’과 ‘신당 창당’의 길목에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유승민 의원은 안철수에 발이 묶여 있다. 자유한국당과의 통합 논의에 시동을 걸려는 유 의원에게 안철수계 의원들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안철수 잡기에 더 적극적이다. 원유철 보수대통합추진단장은 “필요하다면 안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미국뿐 아니라 지구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했다. 앞서 유 의원은 “안철수 만나러 우주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보수 통합 논의가 본격화할수록 안철수의 몸값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 정작 안 전 의원은 미국에서 마라톤 대회 참가 소식을 전할 뿐 별다른 메시지 없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지난달 출국 1년 만에 독일을 떠날 때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이라는 책을 출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언제까지 외국에 머물 거라고 보는 이들은 없다. 답답한 건 안철수계 의원들이다. 앞길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의중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일부 의원이 그를 만나 뜻을 확인하겠다고 나섰을까 싶다. “저희의 길을 가다 보면 안 전 의원을 만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발언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 ‘조국 사태’로 인한 무당층 확대, 정치 불신 심화, 청년층 이반으로 안철수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안철수는 과거 국민들이 만들어준 새로운 정치 질서에서 ‘새정치’에 대한 비전과 전략, 리더십을 보여 주지 못해 실망을 안겼다. 이제 ‘정치 유배’를 끝내고 복귀하려면 기성 정당의 벽을 헤쳐나갈 내공과 시대정신을 갈파하는 새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처럼 모호한 ‘신비주의’가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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