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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문학상] 친애하고도 또 한 번 친애하는 마음

입력
2019.11.14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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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5>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삼대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여성이 삼대를 구성할 때, 이 특별함은 각별함이 된다. 할머니와 손녀의 나이 차는 어림잡아도 40살이고, 40년이라는 시간은 아득하다.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도, 할머니도 사이좋게 나이를 먹는다. 이윽고 딸이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딸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가부장제와 모성신화, 여성에게 가해지는 배제와 폭력을 엄마도, 할머니도 견뎌왔을 것이라 생각하면 화도 나고 눈물도 난다.

백수린은 ‘친애하고, 친애하는’에서 딸과 엄마, 할머니가 형성하는 전형적인 서사 구도를 비튼다. 엄마는 바쁘고 딸은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와 친밀감을 느낀다. 제때 형성되지 못한 애착 관계는 모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이 거리는 결정적인 사건에 의해 단박에 좁혀지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말은 너무 쉽게 튀어 나가 듣는 이에게 비수로 꽂힌다.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감정의 골이 생기고 무수한 추억도 그 골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늘 다른 어떤 말을 궁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연수는 ‘청춘의 문장들+’에 이렇게 썼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자가 쓰는 문장이 제게는 좋은 문장이에요.” 백수린은 소설 속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실패한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틈입을 시도한다. 실패할 것을 알지만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백수린이 소설 속 화자의 입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라고 말할 때, 이는 우리가 환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도 된다. 환상 덕분에 관계의 지속이 가능하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에게 말한다. “봐라, 인아야.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우리는 모두 어떤 지점에서는 끈기가 없는 사람, 잘 부서지는 사람이다. 실패할지언정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소중해진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존재가 된다.

소설의 제목에는 ‘친애하다’라는 단어가 두 번 쓰였다. 이는 ‘두’ 모녀 관계를 향한 표현일 테지만, 나는 친애하고도 또 한 번 친애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두 번 힘주어 말할 때에야 겨우 가닿는 마음, 쉼표에서 숨을 골라야 가까스로 전달될 수 있는 진심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이 소설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거리낌 없으면서도, 못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삼대의 사전적 의미는 “아버지, 아들, 손자의 세 대”다. 하루빨리 의미가 바뀌기를 바란다. 나는 더 많은 삼대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 점조직들이 가까스로 손을 내밀어 연결되는 각별한 여성 이야기, 백수린은 그것을 썼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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