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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잇츠 쇼타임

입력
2019.11.1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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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조작이 없었다 해도, 이런 방식의 쇼는 공정할 수 없다. 순위가 매겨지는 일에 공정함은 불가하다. 이것이 찜찜함을 대면한 결과다. 쇼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삶의 쇼는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잇츠, 쇼타임. Mnet ‘프로듀스 X101’ 방송화면 캡처
설령 조작이 없었다 해도, 이런 방식의 쇼는 공정할 수 없다. 순위가 매겨지는 일에 공정함은 불가하다. 이것이 찜찜함을 대면한 결과다. 쇼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삶의 쇼는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잇츠, 쇼타임. Mnet ‘프로듀스 X101’ 방송화면 캡처

2016년 시작된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는 사회적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이돌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을 101명 모아, 실력에 따라 A부터 F까지 등급을 나누고, ‘국민 프로듀서’로 불리는 시청자의 투표에 따라 방송에서 중도 하차시킨다. 매주 순위는 바뀌고, 출연자는 가슴팍에 레벨이나 순위를 붙여, 그가 A인지 F인지, 1등인지 51등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한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멤버들은 데뷔의 영광을 차지한다. 여러 소속사의 아티스트를 모은 그룹은 시한부로 활동한다.

이 직관적이고 과감한 기획 곳곳에 찜찜한 구석이 많았음은 물론이다. 일률적인 성과주의와 포퓰리즘, 10대 청소년이 다수 포함됐던 출연진의 보호받지 못했던 인권과 자존감, 과열된 팬덤 등. 이런 찜찜함은 쇼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대명제 아래서 숨을 죽였다. 경연을 준비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연습생끼리의 스토리를 빚어냈다. 연습생은 캐릭터가 됐다. 각각의 캐릭터의 매력을 발견한 팬들은 자연스레 쇼에 몰입했다. 스타가 탄생했다. 모두가 좋아 보였다. 무대가 시작할 때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MC는 외쳤다, “잇츠, 쇼타임!” 쇼는 계속돼야 하고, 이 쇼의 인기 또한 영원할 것 같았는데….

이 쇼가 그 쇼일지는 알 수 없었다. 쇼의 PD는 구속됐다. 그는 세 번째, 네 번째 시즌의 시청자 문자투표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40여차례에 걸쳐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았다고 한다. 쇼가 만들어 낸 인기 그룹은 돌연 해체 위기에 봉착했다. 3기 그룹 ‘아이즈원’의 컴백 일정은 모조리 연기됐고, 출연 중이던 방송에서도 사라졌다. 4기 그룹 ‘엑스원’은 정해진 해외 일정을 진행한다지만, 이후 활동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비슷한 유형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학교’ 출신 ‘프로미스 나인’의 향후 행보도 불투명하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멤버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무참함과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쇼가 한창 속도를 낼 때, 만나는 사람마다 각자의 ‘픽’을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쇼핑을 했던 것 같다. 큰돈 들지 않는 쇼핑이었다. 출연 연습생 모두 각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우리는 고르기만 하면 됐다. 데뷔에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그들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일상에 위로가 됐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이 일이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역시 쇼의 세계는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을 두고 ‘공정 사회’를 위해 더욱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정작 ‘프로듀스’는 한 편도 보지 않았을 법한 중년의 남성들이 나와 청년 세대의 아픔, 공정한 기회 같은 말을 운운하며 뭘 자꾸 가르치려 든다. 강남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고, 조작할 수 있는 건 슬쩍 조작하고, 걸리면 꼬리를 자르는 행태는 확실히 기성세대의 것이기는 하다. 피해자는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쇼에 열광하고 몰입했으며, 주변에 문자투표를 독려했던 이들은 독하게 세상을 배웠다. 누군가는 관계자들이 처벌받고, 그룹이 해체되면 공정 사회가 될 것이라 여기는 모양이지만, 그 또래의 사람을 연습생이란 이유로 짧은 기간 투표로 줄을 세우는 일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쇼는 철저하게 우리 사회의 거울이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공정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설령 조작이 없었다 해도, 이런 방식의 쇼는 공정할 수 없다. 순위가 매겨지는 일에 공정함은 불가하다. 이것이 찜찜함을 대면한 결과다. 쇼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 삶의 쇼는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잇츠, 쇼타임.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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