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프리미어12 야구대표팀이 승승장구하는 원동력은 팀 분위기다. ‘탈 권위‘를 내세운 김 감독이 먼저 ‘개그맨’을 자처하면서 최고참 박병호(키움)부터 막내 강백호(KT)까지 친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조별리그 전승으로 1차적인 부담까지 털면서 선수들은 말 그대로 대회를 즐기고 있다.
특히 이정후(키움)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코칭스태프는 “이제 3년차인데 아버지 이종범의 베테랑 때를 능가하는 여유가 묻어난다”며 놀라워한다. 홈구장 고척돔에서부터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던 이정후는 도쿄에서 시작된 슈퍼라운드에서도 매서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호주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한 이정후는 안타 2개를 모두 2루타로 만들며 팀에 득점 찬스를 안겼고, 캐나다전에서도 3타수 1안타로 타격감을 이어갔다. 쿠바와의 최종전에서도 2루타와 4사구 2개로 3차례나 출루했다.
도쿄돔에서 시작된 강적들과 험난한 일정을 앞두고도 이정후는 “이상하게 안 떨린다”고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좀 떨려야 정상인데”라고 웃으며 “원래 긴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했다. 그를 보는 코칭스태프는 “이정후는 전형적인 슈퍼스타 체질이다. 프로에 온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결국 수많은 관중 앞에서, 찬스에서 활약을 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멘탈의 차이가 결정한다”고 말한다.
시종일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훈련을 마치고 취재진과 농담을 주고 받은 이정후는 11일 미국전에서도 3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2루타 2개를 포함해 4타수 3안타로 펄펄 날며 절정에 오른 타격 솜씨를 뽐냈다. 이번 대회 4경기 성적은 타율 0.538(13타수 7안타)이며 7개의 안타 중 절반이 넘는 5개가 2루타다. 타율과 2루타 부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무려 1.570에 달한다.
이정후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전 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0.417(24타수 10안타)로 금메달을 도우면서 본격적인 ‘국제용’으로 이름을 알렸다. KBO리그를 거쳐 간 스타플레이어는 무수히 많지만 국제무대에서 통한 강심장은 또 다른 클래스의 선수로 분류된다.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을 비롯해 이승엽(SBS스포츠 해설위원), 이병규(LG 코치), 박재홍(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등이 원조 국제용 선수들이다. 이정후는 이제 고작 고졸 3년차라는 점에서 그 어떤 선배들보다 주목된다.
이정후는 오는 16일 열리는 한ㆍ일전에 대해서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이종범이 주니치에서 활약할 당시 나고야에서 태어나 일본이 출생지인 이정후는 “개인적으로 일본전에 좋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 한번 이기고 다 졌다. 이번 한일전은 웃고 싶다”면서 필승 각오를 보였다.
도쿄=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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