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왼쪽) 윤정희씨 부부가 2007년 한 행사장에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남편이 피아노 선율을 구도할 때 아내는 객석 맨 뒷자리에서 묵주를 쥐고 고요히 기도를 올렸다. 아내가 빛나는 조명 아래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을 땐 남편이 존재를 지우고 기꺼이 그림자가 됐다. 남편은 결혼 이후 40여년간 아내의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잘라줬고, 아내는 남편의 공연 구두를 직접 닦았다. 남편은 영화 마니아, 아내는 클래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로, 영혼을 나눈 예술가 동지로, 업무상 일정을 챙겨 주는 서로의 매니저로, 피아니스트 백건우(73)씨와 배우 윤정희(75)씨는 그렇게 한시도 떨어지거나 멀어지지 않았다. 늘 붙어 있으니 휴대폰도 한 대면 족했다.

백씨가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아동ㆍ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객석 한 자리가 허전했다. 남편의 연주 여행에 아내가 함께하지 못한 건 올해부터다. 윤씨는 지금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수년 전 발병한 알츠하이머 증상이 악화해 이젠 딸(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씨)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한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연주해야 하는 음악가의 숙명이 처음으로 부부를 떨어뜨려 놓았다. 윤씨는 남편 곁을 떠나 프랑스 파리 근교 호숫가 마을에서 요양하고 있다. 근처에 사는 딸 진희씨가 엄마를 돌본다.

윤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2, 3년 전부터 영화계에 서서히 알려졌다.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오랜 지인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일이 잦았다. 본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공연계에 따르면 4, 5년 전 윤씨의 병세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연계도 영화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지만 백씨의 간곡한 부탁에 모두가 말을 아꼈다.

그런 와중에도 윤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백씨의 연주 여행에 동행하고 영화 행사에도 참석했다. 2016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특별전에 참여했다. 기자회견은 물론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소화했다. 그때도 백씨는 곁을 지켰다. 윤씨가 특별전 개막식을 찾은 팬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윤씨가 그런 백씨를 장난스럽게 흘깃 바라보며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너무 소녀 같은가 봐, 남편이 만날 놀려요.” 이날 윤씨는 ‘백건우’라는 그림자 덕분에 더욱 빛났다.

윤씨가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 나선 건 지난해 11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 시상식이다. 특별공로상을 받은 그는 직전에 세상을 떠난 배우 신성일(1937~2018)씨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김종원 영화평론가는 “당시에도 윤씨가 건강이 좋지 않아 수상하러 나올 때 부축을 받아야 했지만 정신력과 의지로 굳게 버텼다”며 “앞으로 또 이런 자리에 윤씨가 나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어서 무척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고 돌아봤다.

2013년 '섬마을 콘서트'를 울릉도에서 열기 전 윤정희(왼쪽), 백건우씨 부부. MBC 제공
영화배우 윤정희씨와 부군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해 1월 백씨의 스페인 연주회까지 윤씨가 함께했다. 1월 말 윤씨가 모친상을 당해 먼저 한국에 들어왔고, 해외 연주 일정을 마친 백씨가 곧 뒤따랐다. 3, 4월 국내 연주회는 백씨 혼자 소화했다. 3월 ‘쇼팽: 녹턴 전집’ 발매 간담회에서 그는 “아내가 몸이 조금 아프다. 당뇨 치료를 받고 있다”고만 말했다. 당시 백씨는 윤씨가 국내에서 요양할 곳을 알아 보기도 했지만, 얼굴이 알려진 탓에 더 불편할까 염려해 자택이 있는 파리에서 돌보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백씨의 기획사 빈체로의 송재영 부장은 “올해 초부터 백씨 가족들이 윤씨의 투병 사실을 알리는 시기를 고민해 왔다”고 전했다.

윤씨의 삶은 오로지 영화와 남편뿐이었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사랑은 바래지 않았다. 요즘에도 40, 50년 전 영화를 찍던 때 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백씨가 만나러 왔다가 돌아간 뒤에는 유독 힘들어한다고도 했다. 윤씨는 늘 이야기했다. “가족 덕분에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늘나라에 가기 전까지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요.”

윤씨의 최근작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다. ‘만무방’ 이후 16년 만에 출연한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레드카펫을 밟았고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이 감독은 윤씨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다. 주인공 이름도 윤씨의 본명인 ‘미자’다. 공교롭게도 극중 미자 역시 알츠하이머를 앓는 인물이었다. 윤씨는 “좋은 작품이 있다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파리에서 날아 오겠다”며 연기 열정을 내비치곤 했다. 고 신성일씨는 생전에 윤씨와 함께 새 영화 제작을 추진하기도 했다.

윤씨는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50년간 영화 330여편에 출연했다. 문희, 남정임씨와 더불어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붐을 일으키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1974년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만난 백씨와 1976년 결혼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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