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안정적인 왕위계승 방안 검토와 관련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현 상왕)의 생전 퇴위를 결정한 2017년 6월 왕실전범특례법에 따르면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의식 후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으나 보수ㆍ우익세력들의 여성ㆍ여계(女系ㆍ모계) 일왕에 대한 거부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1일 정부의 왕위계승 방안 논의와 관련해 “일왕 폐하의 즉위의식에 따른 일련의 중요한 행사가 무사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즉위의식 관련 행사를 마친 이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내년 4월 열리는 후미히토(文仁) 왕세제가 왕위 계승 1순위(고시ㆍ皇嗣)임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행사가 즉위의식 관련 행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만약 포함된다고 판단할 경우엔 내년 4월 이후로 논의가 미뤄질 수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왕위계승 논의를 주저하는 배경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포함한 보수ㆍ우익세력이 남성ㆍ남계(男系ㆍ부계) 일왕을 고집하고 있어서다. 아베 총리는 최근 월간지 ‘문예춘추’ 인터뷰에서 “남계 계승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역사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역대 일왕 중 여성이 8명 있었으나 모두 남계(부계) 혈통에 따른 계승이란 점을 거론한 것이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이나다 도모미(稲田朋美)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전날 강연에서 “여계(모계 혈통 일왕)로 하면 ‘왕실의 정당성을 잃는다’는 비판이 나올 게 아니냐”며 남계 계승을 지지했다. 앞서 자민당 보수의원들의 모임인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지난달 아베 총리에게 옛 왕족이었던 남성들을 왕족으로 복귀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여성ㆍ여계 일왕 검토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이는 야당과 일반인들의 인식과 거리가 있다. 지난 9월 28~29일 실시한 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 일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4%, “여계 일왕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1%였다. 이에 지지(時事)통신은 전날 “일본 정부가 왕위계승 논의와 관련해 여성ㆍ여계 일왕 논의를 보류하고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족 지위를 유지하는 ‘여성 궁가(宮家)’를 용인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스가 장관은 이에 “아는 바 없다”고 부인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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