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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문학상] 우리가 기다려왔던 여성서사 SF의 도래

입력
2019.11.12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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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3>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함께 누구나 믿고 읽는 신예가 되었다. 김초엽의 소설은 기술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소외 당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 누구도 서로 짓밟지 않는 유토피아를 넘어서 고통스러운 세계로 들어가 기꺼이 억압과 싸우도록 만드는 사랑의 힘을 소중히 들어올린다. 그러나 좀 더 특별하게 바라보고 싶은 지점은 따로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상대화시키는 SF 장르의 인지적 깨달음이 주는 서늘함이 김초엽의 손에서는 언제나 고독한 한 인간을 다정하게 감싸 안는 온기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단편 ‘공생 가설’에서 연구자들은 아기들의 뇌 속에 일정 기간 공생하는 지구 밖 행성에서 온 ‘그들’이 아기들을 도덕과 이타성을 가진 존재로 키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 안에 내재된 가장 좋은 가치들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의 근원이 인간 밖에서 온 외계성이라는 가설은 인간을 그저 하나의 종(種)으로 인식하는 겸허함의 자리에 도달하게 만든다.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고독했던 류드밀라에게만 ‘그들’이 끝내 떠나지 않음으로써 모두에게 사랑 받았던 그들의 고향 행성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음을 알려준다. 최초로 외계의 지적 생명체 ‘루이’들을 만나고 사랑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없어 허언증 환자로 몰렸던 생물학자 할머니가 등장하는 ‘스펙트럼’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과 사랑을 지구 바깥에서 찾음으로써 작가는 인간의 기원을 다시 쓴다. 이와 함께 알려주는 것은 세상에서 고립된 듯 보이는 인물들이 실은 가장 경이로운 경험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외계 생명체에게 내밀하게 가닿았던 그들의 경험은, 그 경험이 다 전달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역설적으로 비밀을 간직한 고유한 존재가 된다. 자연과학의 학술적 지식들을 쌓아 올리는 작가의 담백한 서사전략은 한 인간의 비밀스러운 서랍을 살짝 열어젖히는데 성공한 것이다.

노년의 여성 과학자를 비롯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대개 여성이며, 진취적이라는 사실은 이 시대의 감각과 결을 같이 한다. 이 여성인물들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계의 진실을 알고자 하기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보다 자신의 연구를 우선순위에 두며, 사적인 욕망을 위해 실패하길 개의치 않는다. 김초엽의 소설은 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지는 모녀 계보를 그리지만 사회의 모성 담론에서 탈피하고, 소수자로 자리한 이들이 죄책감 없이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한다. 타자를 경유해 비장한 깨달음과 윤리로 도약하는 대신 자신 역시 이해 불가능한 타자의 자리에 머물기를 택하는 김초엽의 첫 소설집을 두고 우리가 기다려왔던 여성서사 SF의 도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19년, 김초엽이라는 아름다운 행성의 등장으로 한국 문학이라는 소우주는 조금 더 곁을 넓히게 되었다.

강지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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