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차관보(왼쪽)와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가운데)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류효진 기자

지난주 미국 국무부 고위 인사 3인이 한국에 총출동했다. 국무부에서 한미 관계를 담당하는 동아태 차관보,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에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까지 왔다. 14일에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방한한다. 많은 한국 언론들이 이들의 집중 방한을 방위비 분담 관련 압력이라 보고 있다.

미국으로선 압력 행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리한 액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약 47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2월 한미 간 합의된 분담금 액수가 약 1조400억원이었다. 일거에 5배 이상 올리자는 말이다.

이미 한국은 주한미군 운영비의 약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주한미군 평택 이전 비용 107억달러(약 12조4,000억원)도 거의 전부 우리 측이 부담했다. 만약 매년 5조5,000억원을 준다면, 주한미군 운영 비용뿐 아니라 미군 인건비 약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까지 전부 우리 부담이 된다. 미군은 용병이 되고, 한미 동맹은 고용계약으로 전환된다.

방위비분담금 협정은 사실 명칭부터 잘못됐다. 원래 이 협정은 방위비 전부가 아니라 미군 ‘주둔비용’ 분담을 위한 협정이다. 원래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 1항에 따르면 미군 주둔비용은 전액 미국이 부담토록 되어 있다. 단 이 협정 2항에서 ‘시설과 구역’은 한국 측이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발전된 경제력을 감안해 주둔비용 중 일부를 한국이 분담하는 특별협정을 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미국의 요구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 5조 위반이며, 미군 주둔비용 일부를 한국 측이 ‘분담’한다는 주둔비용 특별조치협정(SMA)의 정신에도 반한다. 미국이 한국 측에 ‘분담’이 아닌 ‘전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의 배경을 일각에서는 트럼프라는 괴짜 대통령의 상업주의적 동맹관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이 주한미군으로 갑질을 해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0년 미국은 주한미군 7사단 병력 2만명 철수 결정을 내렸다. 76년 당선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전면 철수를 추진했다. 모두 우리 측과 사전협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은 베트남전 장기화로 경제력이 소진된 데다 국내적으로 극심한 국론분열에 직면해 있었다. 결국 미국의 국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하에 미국은 공산세력과의 타협에 나서게 된다. ‘아시아는 아시아가 지키라’는 요지의 괌 독트린(1969), 69년 시작된 미소 간 핵무기 감축협상, 72년 닉슨 대통령의 전격 방중은 모두 이러한 외교전략의 대전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한미군 철수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일부였다.

이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단호한 대응을 보였다. 75년 6월 12일 박정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철회되면 한국은 핵무장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79년 카터 대통령 방한 시에는 무려 45분간 카터 면전에서 카터 정책의 잘못을 조목조목 따졌다. 회담 이후 카터가 격노한 것도 당연했다.

지금 미국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국력 약화, 그리고 ‘외국의 일은 외국에 맡기자’는 미국 내 고립주의 고조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터무니없는 미군 주둔비용 분담 요구는 70년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전략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에 이러한 거대한 배경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자’ 식의 미봉책으로는 현 국면을 돌파하기 어렵다. 전략환경의 변화를 옳게 읽어 우리의 독자적 대안들을 개발해야 하며 특히 무엇보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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