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주로 근무하는 직군의 정년을 남성 우세 직군보다 훨씬 짧게 정한 국가정보원 내부 규정은 성차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국정원 전산사식 직렬(출판물 편집 등을 담당하는 일)에서 일했던 A씨 등 여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난 공무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 등은 1986년 공채로 입사해 전산사식 직렬로 근무하다가 1999년 이 직렬이 폐지됨에 따라 의원 면직됐다. 이후 곧바로 다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재임용돼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며 일하다 2010년 45세로 정년 퇴직했다. 국정원의 계약직 직원 규정은 여성이 주로 근무하는 전산사식 업무의 정년을 43세로 규정하고 있다. A씨 등은 이 규정 부칙에 따라 43세 정년을 맞은 후 2년을 더 근무하다가 최종 퇴직했다.
A씨 등은 이 규정이 ‘정년ㆍ퇴직 등에서 남녀를 차별할 수 없다’고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2012년 자신들에게 여전히 공무원 자격이 있음을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여성이 대부분인 전산사식과 달리 남성들이 주로 일하는 영선 업무(건축물 유지ㆍ보수)나 원예 업무의 정년은 57세임을 보면, 이 규정이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1심은 “특정 직렬에 주로 여성이 근무했다는 것만으로, 이 규정이 여성에게만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소 패소 판결했다. 2심도 “A씨 등은 계약직 공무원으로 계약 기간 만료에 따라 퇴직한 것”이라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실상 여성 전용 직렬로 운영된 분야의 근무상한 연령을 남성 전용 직렬보다 낮게 정한 조치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는 국정원장이 증명해야 한다”며 “이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 국정원 연령 규정은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당연 무효”라고 판단했다. 직군에 따라 근무 상한 연령을 달리 정한 국정원 내부 규정이 국정원법 등 상위 법령에 구체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편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지난해 6월 임기제 직원의 정년을 남녀 모두 60세로 변경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