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한국어와 한국소설에 관심이 생겼어요. 한국에선 영화도 개봉했다고 들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꼭 보고 싶어요.”
9일 도쿄의 서점거리인 진보초(神保町) 출판클럽빌딩에서 열린 K-BOOK 페스티벌에서 만난 하시모토 하나코(橋本花菜子ㆍ26)씨는 한국소설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넓혀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인 지영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다소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회사원인 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며 “주변 동료들과 이 소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과 이에 반발하는 남성 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나카가와 유키(仲川優希ㆍ45)씨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웠는데 일본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하러 방문했다”며 “드라마보다 소설을 통해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일본어로 출간한 지쿠마쇼보(筑摩書房)의 오타케 신(尾竹伸) 홍보과장은 “작년 12월 이후 14만8,000부를 찍었는데, 해외문학 작품이 1년도 안 돼 이 정도의 실적을 올리는 것은 드물다”고 밝혔다. 출판 천국인 일본에서도 최근 ‘혼바나레 (本離れㆍ책을 읽지 않거나 멀리함)’ 현상이 두드러져, 최근엔 일본문학도 10만부를 넘기면 ‘대박’으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 ‘82년생 김지영’의 성과는 더욱 빛난다. 오타케씨는 “일본 남성들도 소설을 읽고 ‘여성들에게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구나’라고 공감하고 있다”며 “조남주 작가의 ‘사하맨션’의 번역본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냉랭한 한일 관계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한국문학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을 계기로 일본 독자들의 관심이 전에 소개된 박민규, 한강, 정세랑 작가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김연수 작가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이기호 작가의 ‘차남들의 세계사’ 등의 작품도 조만간 번역돼 출간된다.
독립서점 ‘후타고노라이온도’ 운영자 다케다 신야(竹田信弥ㆍ33)씨는 “일본 문학은 주로 내면적이거나 오락적인 내용인데 반해, 한국 문학은 사회 현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며 “일본 문학에 더 이상 흥미를 잃은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서점에선 올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을 주제로 한국 소설 독서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문학을 소개해 온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는 “일본의 한국문학 붐은 단순히 10만부를 넘긴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는 게 아니라 일본 출판사들과 서점에서 한국문학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20여곳의 일본 출판사와 3곳의 한국 독립서점이 부스를 마련해 한국과 관련한 책들을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한일 독립서점주들의 대화, 이기호 작가와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斎藤真理子)씨, 시미즈 지사코(清水千佐子)씨와의 토크쇼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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