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심 유죄로 수감은 위헌” 결정 따른 조치… 브라질 정치권 요동
부패 혐의로 복역 중이었던 ‘남미 좌파의 아이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석방됐다. “2심 재판의 유죄 판결만으로 피고인을 수감하는 건 위헌”이라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로, 지난해 4월 초 남부 쿠리치바 시내 연방경찰 시설에 수감된 지 580여일 만에 한시적으로나마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물론 이번 석방 결정이 룰라 전 대통령의 ‘무죄’를 뜻하는 건 아니지만, 남미 좌파 정치의 상징이었던 그가 풀려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브라질 정치권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APㆍ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브라질 쿠리치바 연방법원의 다닐루 페레이라 주니오르 판사는 이날 룰라 전 대통령의 석방을 결정했다. 이날 저녁 연방경찰 건물을 빠져 나온 룰라 전 대통령은 “나를 기다려 준 지지자들에게 감사하며, (나의 석방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소감을 밝혔다. 당시 연방 경찰 주변에는 가족과 좌파 정당ㆍ사회단체 회원,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경찰의 통제에도 큰 혼잡이 빚어졌다.
앞서 룰라 전 대통령은 브라질 사법당국의 반부패 수사, 이른바 ‘세차 작전’을 통해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가 드러나 기소됐다. 2017년 7월 1심에서 9년 6개월, 지난해 1월 2심에선 12년 1월의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고, 지난해 4월 7일 전격적으로 수감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전날 대법관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결정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 뒤, ‘찬성 5표, 반대 6표’로 위헌 판단했다. 이에 따라 룰라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오전 그의 석방을 법원에 요청했고, 오후에 연방법원이 석방 결정을 내리게 됐다. 이번 조치로 큰 타격을 입게 된 ‘세차 작전’ 수사팀은 전날 성명을 통해 “대법원이 부패와의 싸움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정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 석방 결정은 일시적인 조치다.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석방은 브라질 정치권에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일단 그의 소속 정당인 좌파 노동자당(PT)는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와 당원들도 룰라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상파울루주 상 베르나르두 두 캄푸 시에서 대규모 환영 행사를 열었다.
관심의 초점은 향후 룰라 전 대통령의 행보다. 그는 앞서 자신이 석방되면 ‘정치 캐러밴’에 나서겠다는 뜻을 표명한 바 있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 내년 지방선거에서 룰라 전 대통령이 좌파 진영의 선거 전략을 총지휘한다거나, 직접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좌파 진영이 압승을 거둘 경우, 아예 2022년 대선 출마를 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브라질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브라질 국내 정치를 넘어서 ‘남미 좌파 연대 부활’이라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대선에선 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이미 승리했고, 우루과이 대선 역시 좌파 집권당 다니엘 마르티네스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브라질은 물론, 남미 좌파 진영의 시선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