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 검색해봐.”
책상에 앉아서 책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손가락 터치 몇 번이면 검색에서 구매까지 거침이 없다. 그러나 ‘진짜 그런 책은 없는데요’에 등장하는 책방에는 이런 방식이 안 통한다. 철저하게 아날로그적으로 책을 찾고 구매한다.
책에는 오래된 서점을 운영하는 서점 주인이 겪었던 에피소드를 손님과 직원의 대화가 담겨있다. 특이한 고객의 독특한 질문, 별난 고객의 난감한 요구에 피식, 웃음이 솟는다. 생소하고 재밌다.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진지한 마음들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이 많은 도서관과 서점을 좋아했다. 책의 원래 모습이었을 울창하고 고요한 숲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복잡했던 마음,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었다.
특히 오래된 서점에 감도는 쿰쿰한 책 냄새는 마음의 후각을 자극한다. 크기와 두께가 다른 책들이 삐뚤빼뚤 가득 채워진 나무 책장 사이에 서 있노라면 책 너머 창밖에 비치는 햇살도 좋았다. 마음까지 환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풍기는 오래된 서점에서 이뤄지는 일상의 대화들은 저마다 따뜻한 사연들을 품고 있다. 화자의 말대로 서점의 세계는 절대 지루할 일이 없다.
머리말에서부터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발견된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책을 구매해 손자 손녀들에게 읽어주고 싶다”던 한 손님은 작가가 운영하는 오래된 서점에서 자신이 40년 전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책을 발견한다. 책 앞장에는 손님의 이모할머니가 쓴 글귀가 적혀 있었고, 떨어뜨려 생긴 자국, 얼룩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순간들을 ‘그저 축복’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서점 직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람찬 직업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했다.
‘손님 : (책값을 내면서) 난 예전부터 서점 주인하고 결혼하고 싶었는데. / 직원 : (침묵) / 손님 : 혹시 단골손님과 결혼하는 환상을 가진 적 있나요?’ / 이런 로맨틱한 멘트가 서점에서 나올 줄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이런 고백을 받는다면 얼마나 설렐까.
일상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좋은 책이 가지기 마련인,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미덕이 발휘된 장면들이다.
‘직원: 제목이 뭔가요? / 손님: 그게 문젠데, 제목이 영 기억이 안 나요. / 직원: 괜찮아요. 그러면 작가 이름은 기억나세요? / 손님: 작가 이름도 몰라요. / 직원: 그렇군요. / 손님: 그런데 굉장히 유럽 느낌이 났던 건 확실해요. / 직원 : 네 / 손님: 그리고 논픽션이었어요. 조사와 연구가 들어갔을 거에요. 아마도. / 직원: 그렇군요. / 손님: (기대에 찬 얼굴로 직원을 보며) 에이, 아시잖아요. 내가 무슨 책 찾고 있는지 알죠?’
손님과 직원 간에 벌어진 이 스무고개는 현실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한잔요”하는 주문을 받은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매일매일 온갖 유형의 손님들이 찾아와 괴상망측한 요구들을 쏟아놓는다. “산타클로스에게 책 선물을 받고 싶다”며 책 목록을 존재하지 않는 주소로 편지를 써서 부친 순수한 어린아이부터 예측 불가한 이야기들이 서점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서점의 정체성을 드러낸 대화도 마음에 쏙 든다. 저도 모르게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장면이다.
‘손님: 난 고서점이 너무 좋아요. / 직원: 감사합니다. / 손님: 고서점에 오면 굉장히 진귀한 무언가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를테면 빅토리아 시대 때 해적이 소유했던 커다란 보물 궤짝이라든가. 그럼 아주 신바람 나는 하루가 될 텐데.’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모험’, 오래된 서점으로 떠나는 여행. 지금 당장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낙원 같은 보물섬으로 갈 수 없다면, 가까운 서점에서 보물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곳에서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진귀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지언 자유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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