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는 의자가 많다. 등받이가 높은 식탁의자(dining chair), 팔걸이가 있고 푹신한 안락의자(arm chair), 바퀴가 달린 책상의자 등. 화장대 앞에 놓는 스툴(stool)과 다리를 올려놓는 나지막한 스툴과 어린이용 의자도 있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 이것뿐이겠나.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앉는 의자(nursing chair), 몸이 나른할 때 잠시 눕는 데이 베드(day bed), 잔디밭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을 때 들고나가는 접이의자 등등.

벤치도 참 많다. 공원에도 있고(런던공원에는 돈 받고 빌려주는 접이의자도 있다.), 시내 한복판에도 있고, 동떨어져 아무것도 없는 잔디밭에도 있다. 있을 것 같지 않은 들판 한가운데에도 놓여있고, 한참을 올라간 언덕 위에도 놓여있다. 자연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곳, 친구랑 오붓하게 얘기 나누기에 딱 좋은 곳, 느긋하게 책 읽으면 딱 좋겠다 싶은 곳마다 잘도 안다. 사방이 뻥 뚫린 언덕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면 가슴이 뻥 뚫렸고, 거대한 나무의 가지들이 뭉글뭉글 흔들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 상상이 넘실댔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마음은 쉽게 평화로워졌다.

사랑했던 사람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도 있다. 기증과 기부는 훌륭한 업적을 이룬 특별한 사람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사랑을 준 사람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다. 친절을 베푸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있을까? 하찮게 살다간 보통사람이 덧없는 인생을 멋지게 마감하는 거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 떠나간 사람의 삶은 충분하다.

대구에 사는 양수산나 영국 할머니는 “한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는 의자가 없다. 갈 때마다 제안했는데 도통 들어주지를 않는다. 높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선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천천히 편안하게 감상하라면서 그림 앞에 앉을 의자가 없다. 여유를 갖고 느리게 살라고 하면서 앉아서 쉴 데가 없다. 남편이나 연인과 조용히 앉아 있을 곳,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줄 곳, 홀로 내 삶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차분하게 생각할 곳이 없다.

“Kensington Gardens aren’t far, so if I begin to feel cooped up I can walk to the park, hire a deck chair for a shilling, loll about under the trees, watch the passers-by and children play, and I am soothed – somewhat.”

(켄싱턴가든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마음이 갑갑해지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1실링을 주고 접이의자를 빌려서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과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다 보면 갑갑한 게 어느 정도 풀리더라고.) -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빽빽한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열심히 사느라 하루는 빡빡하나 나는 허전하다. 배운 대로 애쓰며 사는데도 바보 같고 변변찮아 기운이 빠진다. 시시하고 허탈해져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느라 답답해진 속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도 싶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음만 들었더니 ‘천천히’와 ‘조용히’란 말은 알 수가 없다. 더러 헐거운 공기와 헐거운 생각이 간절한 날이 있다.

벤치가 당장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시간과 돌이켜보면 쓸모 없을 것 같은 시간을 받아준다. 이불 속에서 울기보다는 나을 거라고 초대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에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나를 반겨준다. 김민식 작가는 <나무의 시간>이란 책에서 ‘숲이 좋은 곳은 사람도 넉넉하다’고 했는데, 나는 벤치가 많은 곳에도 사람이 넉넉할 것만 같다.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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