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대의 평화로운 모습. 가쎄 제공
동독에서 일주일을
오정택 이유진 등 지음
가쎄 발행ㆍ197쪽ㆍ1만2,800원

독일이라고 하면 어느 지역을 먼저 떠올리는지. 한국인은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함부르크, 하이델베르크, 쾰른 등을 연상할 듯하다. 이들 도시의 지리적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옛 서독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30년. 하지만 남북 분단으로 냉전의 엄혹함을 체험한 한국인에게 옛 동독 지역은 여전히 낯설고 멀리하고 싶어진다. 옛 서독보다 낙후됐다는 점, 높은 실업률 등 때문에 네오 나치가 등장했다는 점 등은 더 먼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옛 서독 지역에서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옛 동독 지역을 동유럽보다 더 멀고, 극동에 가깝게 생각한다. 옛 동독 지역은 천형의 땅과도 같은 곳일까. ‘동독에서 일주일을’은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책이다. 동독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점 등을 소개하며 오해를 불식시키려 한다. 나아가 동ㆍ서독 분단에 따른 후유증과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통일되지 않은 정서가 드리운 그늘을 들춘다. 저자 5인은 모두 한국인으로 옛 동독 지역의 중심 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2년을 살고 있는 장기 거주자다. 일상을 겪으며 느낌 소회와 경험이 담겨 있다.

라이프치히 옛 동독 지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다.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동독의 반정부 시위를 이끌며 베를린 장벽 붕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이델베르크대와 함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라이프치히대가 있다. 바하와 베토벤 등 고전주의 음악가의 흔적이 선명히 남은 곳이기도 하다. 학문과 음악의 도시이고, 나름 경제력도 나쁘지 않은 곳인데도 베시(옛 서독 지역 주민)들은 오지 정도로 생각한다. 자녀가 라이프치히 등 옛 동독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면 부모들은 기겁하기 마련이다.

실상은 다르다. 라이프치히의 교육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다. 한국인 유학생의 전언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학 기숙사 비는 한 달에 200유로 내외다. 한 학기(6개월) 등록금은 2019년 기준 210유로. 이 등록금에는 대중교통비까지 포함돼 있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학생들은 등록금을 더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활비도 낮다. 대학 식당에서 파스타를 접시 가득 담아 먹을 때 내는 돈은 1.9유로다. 도서관은 24시간. 책값에 쪼들리면 방대한 장서를 구비한 도서관에 기대면 된다.

교육비만 저렴한 게 아니다. 교육의 질도 높다. 옛 동독 정책의 영향으로 초중고 과정에서 물리와 화학 생물은 필수 과목이다. 옛 동독 지역 학업성취도가 옛 서독 지역보다 압도적인 배경 중 하나다.

보육 체계도 잘 구비돼 있다. 동독은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의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이를 위해 탁아소 등 국영 보육 시설이 잘 구비됐다. 동ㆍ서독 통일 후 보육 시설은 민영화됐지만 인프라는 남아 옛 서독보다 더 보육 복지가 잘 실행되고 있다.

물론 동독 체제가 남긴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통일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상대적 빈곤 상황에 놓인 옛 동독 주민을 대상으로 한 분노와 증오의 정치가 횡행한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가 2017년 독일 총선에서 전국 득표율 12.6%를 기록하며 3위를 기록했는데, 옛 동독 지역의 반이민 정서를 기반으로 했다. 빈부격차는 격심하고, 젊은 층의 소외감과 상실감도 크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할 때까지 40년을 따로 살았던 동ㆍ서독이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는데, 분단 70년을 넘은 남북한은 어떠할까. 책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동독에서 일주일을. 가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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