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부터 대통령과 각 당 총선 ‘인재 영입’ 승부수
“‘얼마나’보다 ‘어떻게’ 바꾸느냐가 더 중요” 지적도
내년 4ㆍ15 총선을 앞두고 일약 ‘전국구 정치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 있죠. 바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입니다. 박 전 대장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이후 첫 공식 영입 인사로 낙점됐다가, 과거 ‘공관병 갑질’ 논란 등이 다시 불거지면서 비판 끝에 보류되는 홍역을 치렀습니다. 정치권 안팎에선 총선 대비 외부인사 영입 첫 행보부터 삐끗하자 “황교안 체제로는 내년 21대 총선서 승리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하네요. 도대체 ‘1호 인재’가 뭐기에 이토록 난리가 난 걸까요.
◇잘 모신 외부 인재 한 명 효과는?
매 총선마다 초선 의원 비율은 늘 40%를 넘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워낙 정치와 정당, 정치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다 보니 선거 때마다 ‘인물 교체’ 요구가 분출하는 건데요, 지난 4월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서도 ‘내년 선거에서 지역구에 다른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응답은 45%에 달했어요. ‘현역의원이 재선됐으면 좋겠다’는 27%뿐이었죠. 매번 총선 때마다 지역구 물갈이 여론이 분출하는 이유죠.
특히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은 정당일수록 ‘의외의’ 새 인물을 앞세워 분위기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어요. 실망한 유권자의 마음을 새로운 얼굴을 내세워 돌려보겠다는 전략이죠. 한국당은 총선 영입 대상 2,000명을 추리면서 김연아 선수, 박찬호 선수, 이국종 교수, 백종원씨 등 유명인들의 이름을 모두 올려놓기도 했죠. 물론 본인들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은 터라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한국당에선 “이것은 짝사랑 리스트”라 선을 그었지만요.
그렇다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요. 20대 국회는 법안 처리율 등 통계 수치만 봐도 역대 최악의 국회란 평가를 받았죠. 때문에 대대적 인적 쇄신 요구가 잇따르는 만큼 민주당 역시 12월 당 인재영입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6일 KBS ‘여의도 사사건건’에서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비공개적으로 작업을 했고, 지금은 검증 단계”라며 “한국당이 영입하고 싶어했던 분들의 상당수는 오히려 민주당으로 오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죠.
◇정치9단의 정국 주도 승부수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 유력 정치인들은 외부 인사 영입을 전략적으로 활용,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고 당에 주도권을 행사하기도 했어요. 사실 총선에서 외부 수혈이 승부처로 떠오른 건 1996년 제15대 총선입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을 개편하겠다는 목표로 직접 공천권을 쥐고 외부 영입을 본격화했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 1호’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 김문수 등 재야 운동권 인사였어요. 지금은 다들 한국당 계열 보수 인사로 익숙한 두 사람이지만, 1994년 당시만해도 진보정당이던 민중당에 몸 담았던 이들을 보수 여당에서 발탁하면서 울림이 컸죠.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 변호사도 이때 정계에 발을 들였고, 이회창ㆍ이홍구 전 총리 등 보수뿐 아니라 중도에도 어필하는 거물급 인사들도 속속 합류했어요.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공천 덕에 성수대교 붕괴(1994년)ㆍ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대형 사고가 이어지고 민심이 흉흉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꺼내든 건 ‘젊은 피 수혈론’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계의 우수인사들을 영입해 신선한 피를 수혈, 당이 새 출발을 하도록 하겠다”면서 2000년 16대 총선에서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ㆍ우상호ㆍ임종석 등 386 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했죠. 대통령 후보로만 4번이나 나선 데다, 이미 상당한 고령이었던 본인과 당의 이미지를 젊음과 개혁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였어요. 결국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후반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죠.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40대 정치 신인이었던 나경원ㆍ유승민ㆍ이혜훈 등을 전진배치 했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판을 휩쓸 분위기였지만 박 전 대통령이 ‘천막당사’와 함께 깜짝 인재 공천으로 야당을 살려냈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박근혜 키즈’로 불린 이준석ㆍ손수조 등 20대 인사를 중용했어요. 최근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긴 다문화가정 출신 이자스민 전 의원도 이때 비례대표 당선권인 15번을 받았죠. 19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 만큼 야당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어 완승을 거뒀어요.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쳐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표 시절이던 2016년 안철수계의 집단탈당으로 당이 흔들리자 연쇄 인재 영입 카드를 꺼내 들었죠. 문 대통령의 ‘영입 1호 인재’였던 표창원 의원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멘토였던 김종인 전 대표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 영입으로 당의 외연을 넓혔어요. 문 대통령이 조 의원을 설득하려 그가 운영하던 홍대 해산물 음식점에 매일같이 찾아갔던 ‘삼고초려’ 일화는 이미 유명해요. 결국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20대 총선에서 1석 차이로 국회 제1당의 지위를 차지했죠. 문 대통령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다진 게 바로 총선 인재 영입이었죠.
◇왜 다 ‘새 얼굴’로 채울 수 없나?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이벤트성’ 외부인사 영입을 두고 쓴소리도 나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무능한 정치인을 바꾸자는 의미의 물갈이가 당의 승률을 높이는 선거전략이 되면서 ‘얼굴 바꾸기’에만 그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어요. 결국 정치권의 수혈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죠. 이번에도 역시 정치권은 벌써부터 유명인의 이름을 하나 둘 언급하면서 기 싸움에 한창인데요. 그들이 어떤 정치 철학을 가졌고, 왜 그 당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정작 관심이 소홀합니다.
특히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정당정치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졌는데, 외부인사 영입 같은 깜짝 쇼보다는 국회 보좌진이나 정당 관료, 지방의회 등 당에서 커온 내부 정치권 인재를 더 중시해야 정당정치가 안정화하고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역 의원 교체율이 얼마인가에 따라서 승리의 가능성이 얼마나 높아지는지에 대해 학술적으로 입증된 바는 사실 없어요. 각 당의 총선 공천 과정에서 ‘얼마나’보다 ‘어떻게’ 바뀌었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결국 한 사람이라도 정말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 또 마땅히 우리를 대표할 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이 되는 사람을 영입하고, 제대로 된 당내 경쟁 절차를 거쳐 총선에 후보를 내는 것이 중요하단 의미겠지요. 4년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갈아봐도 못살더라’라는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각 당이 원칙을 지켜주길 기대해봅니다.
☞여기서 잠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l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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