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7일 전국 초중고 학생 선수(6만3,211명)를 대상으로 올해 7~9월 인권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성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자가 3.8%인 2212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15.7%가 언어폭력을, 14.7%는 신체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이는 올해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 나온 폭력 경험보다 2배가량 많다. 인권위는 “학생 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지만, 공적인 피해 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학생 선수 인권보장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빙상 국가대표 선수의 ‘미투’ 폭로로 체육계의 만연한 성폭력 실태가 드러난 뒤 다양한 법적ㆍ제도적 개선책 마련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방지 대책이 수립ᆞ시행되지 않는 사이 수많은 폭력의 악습이 자행되고 있음이 인권위 조사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그 책임은 우선 정치권에 있다. 여야는 체육계 폭력 근절 법안의 연내 통과에 합의했으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지난달 말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해 법안이 자동 폐기될 처지다. 한국당은 “체육계 인권 침해 관련 신고ㆍ상담ㆍ법률 지원 창구 역할을 맡게 될 ‘스포츠윤리센터’에 대한 정부 측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야의 기 싸움과 여당 소속 문체위원장에 대한 야당 불만이 진짜 원인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는 체육계 책임도 크다. 민관 합동으로 조직된 ‘스포츠혁신위원회’는 그동안 체육계의 고질 척결을 위해 성폭력 등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 학교 스포츠 정상화, 스포츠 기본법 제정 등을 담은 7차례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중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 분리’ 권고에 대해 체육회가 반발하면서 나머지 권고안도 표류하고 있다. 체육회는 9월 자체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스포츠혁신위 권고안을 사실상 외면했다.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체육계 혁신을 민관위원회에만 맡긴 채 갈등 중재나 권고안 추진을위한 노력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어린 스포츠 꿈나무들의 몸과 마음은 온갖 폭력에 멍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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