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초중고생 6만3211명 조사
“신체ㆍ언어폭력” 각각 15^16%
2212명 “성폭력 당한 적 있다”
“하루에 30대 정도 맞았어요. 안 맞는 날은 없고 매일 맞았어요. 창고 들어가서 손으로 등이든 얼굴이든 그냥 막…” (초등학교 남자 배구선수)
“도복 매고 준비상태로 가는데 (감독님이) 애들 ○○ 만지고…”(중학교 남자 유도선수)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전국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 체육현장은 그야말로 인권 사각지대였다. 훈육을 이유로 폭력이 일상처럼 이뤄졌고, 성폭력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인권위는 지난 7월부터 두 달간 운동부를 운영하는 전국 5,274개교 초·중·고 학생선수 6만3,211명(5만7,557명 응답)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이번 조사 결과를 도출했다. 인권위는 연초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폭행·성폭력 사태로 촉발된 ‘체육계 미투’를 계기로 범 정부차원의 조사단을 꾸리고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학교 체육현장에서 폭력은 지도자나 학생 가리지 않고 일상처럼 퍼져 있었다. 응답자의 14.7%(8,440명)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신체폭행 경험자는 고등학생이 16%(2,832명)으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5%·3,288명), 초등학생(12.9%·2,320명) 순이었다. 이는 교육부가 올해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때 나온 결과보다 1.4(초등)~2.6배(고등) 높은 수치다.
신체폭력뿐 아니라 폭언, 욕설, 협박 등 언어폭력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언어폭력을 경험한 이는 15.7%(9,035명)에 달했다. 초등학교 남자 아이스하키 선수는 “단장님과 감독님이 욕을 너무 심하게 하는데 욕을 듣지 않으면서 하고 싶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지도자나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심부름이나 빨래, 청소를 시키는 사례도 많았다. 주요 폭력 가해자는 지도자와 선배선수였다.
폭력이 일상처럼 굳어져 있다 보니 손찌검을 당해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그냥 지나갔다. ‘내가 잘못해 맞는 거야’라든지 ‘실력을 올리려면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고 그냥 넘겼다. 응답자의 24.4%(2,064명)는 폭행을 당한 뒤 감정을 묻는 질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중학교 남자 양궁선수는 “선배들도 그랬으니 우리도 그런 거죠. 운동하는 사람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며 폭력이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 폭행을 당했을 때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피해구제에 나선 이들의 비율은 전체 통틀어 14명(7.1%)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폭력은 성적 향상을 위한 필요악”이란 인식이 체육계 전반에 퍼져 있다 보니 폭력 문화가 대물림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총 2,212명으로 전체의 3.8%나 됐다. 중학생 성폭력 경험 비율이 4.9%(1,071명)로 가장 높았고, 초등생도 2.4%(438명)나 됐다. 초등학교 성폭력 피해자는 주요 가해자로 선배선수(174명), 또래선수(162명), 지도자(153명)를 꼽았다. 중·고등생의 경우 주요 가해자로 동성 선배와 또래 선수가 꼽혔다. 중학생 피해자 중 성관계를 요구 받거나 강간을 당했다고 답한 건수는 9건과 5건이었다. 같은 질문에 대한 고등학생 응답건수는 각각 9건과 1건이었다. 성폭력 문제에서도 절반 가까이 되는 이들(903명·40.8%)은 아무 대응 없이 넘어갔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학생 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노출돼 있음에도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정책 개선안을 마련해 관련 부처에 제도 개선을 권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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