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제2 출발점’에 서다]<5> 다시 절반의 항해, 암초는 많다
대통령 안정적 지지율이 되레 독… 보수야당 국정동반자로 포용해야
지지율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2년 반은 나쁘지 않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적 열기는 식지 않았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조사가 시작된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가장 높은 81%로 출발해 임기 반환점까지 40%선(3년차 2분기 평균 45%)을 지켜냈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38%)도,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했던 박근혜 정부(36%)도 이루지 못했던 성과다.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소득주도성장,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으로 많은 변화를 이끌었고 국민들은 호응했다. 하지만 안정적 지지세가 오히려 국정운영에는 독이 된 모양새다.
문제는 정치다. 국정운영의 한 축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그늘 아래 숨어들며 스스로 존재감을 지웠다. 참여정부 당시 ‘분열의 트라우마’를 말하지만, 속내는 문 대통령의 지지세가 꺾이지 않는 한 핵심 지지층을 결집한다면 21대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계산에 닿아있다.
여당의 자기검열 기류 속에 민생ㆍ정책은 실종됐다. 야당 시절 ‘을지로위원회’를 중심으로 ‘갑의 횡포’를 이슈화하며 정책 의제를 주도했던 모습과 대비된다.
‘강한 여당’을 앞세운 이해찬 대표 체제가 지난해 8월 출범하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석 260석 확보’, ‘20년 집권’이란 구호만 기억될 뿐이다.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도 이 대표를 비롯한 여권 지도부였다고 전해진다. 내년 총선과 이후를 대비한 포석 차원에서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로 꼽히는 양정철 원장 취임 이후 집권여당의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총선 병참기지’를 자처하고 있다. 얼마나 정치공학적 사고에 매몰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지율 고공행진은 야당과의 협치를 어렵게 한 측면도 있다. 탄핵 사태 이후 지지기반 재건이 다급한 야당이 과도하게 국정 발목잡기에 나서고 있다는 게 사생결단식 여야 대결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권은 오히려 야당의 ‘헛발질’과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혁신성장을 위한 데이터 3법, 주 52시간제 보완을 위한 탄력근로제 확대법 등 보수층에서도 동의하는 비쟁점 민생ㆍ경제법안들 조차 여야의 외면 속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제 임기 반환점인데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고위공직자가 22명으로 역대 정부 통틀어 가장 많다. 그런데도 여권에선 ‘야당 복이 있다’는 말을 입에 올릴 정도다.
여권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느냐 되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입법이 여의치 못하다고 정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모습은 앞선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길을 되밟아가는 모습이다.
오만과 독선에 빠질수록 정권이 실패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적 우려에도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임명을 강행했다 조기 낙마한 김기식 전 금융감동원장,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법과 원칙’이라는 경직된 잣대만 휘두른다면 대화와 타협을 기본으로 한 정치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민심과 동떨어져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
협치를 향한 약속은 문 대통령이 확인해준 바 있다. 지난해 말 국회의 오랜 관행을 깨고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을 지시함으로써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이른바 김용균법 처리의 물꼬를 텄다.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하던 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문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여야 관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ㆍ외교ㆍ안보 등 국제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 또한 정치복원을 통한 국민통합이 시급한 이유로 꼽힌다. 미ㆍ중을 중심으로 헌 강대국이 패권경쟁을 벌이며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지정학의 귀환’ 시대, 남은 절반의 임기 다시 항해에 나서는 문재인 정부가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국론통합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반도 비핵화도, 한일 갈등도, 잇단 경제 난국도 국민 다수의 동의와 협력을 얻지 못하고선 돌파가 쉽지 않다.
정치의 복원은 보수야권을 국정 동반자로 포용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선 굵은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황교안 대표가 단독회동을 요구하면 기꺼이 수용해 주는 게 집권세력다운 모습”이라고 말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진보ㆍ보수가 서로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정치의 실종을 초래하고 있다”며 “악순환을 풀 수 있는 것은 승자인 집권여당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을 고민했던 이유를 되짚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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