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웰 차관보 “한미 동맹, 인도ㆍ태평양 안보 핵심”… 지소미아는 한국 입장 경청
안보와 경제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동시에 한국에 집결했다. 키이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차관보, 제임스 드하트 한미방위비분담금 협상 미측 대표가 6일 각기 다른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정부 당국자 등과 회동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ㆍGSOMIA) 종료 시한(이달 23일 0시)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라, 지소미아 복귀를 본격 압박하려는 의도일 거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세 사람의 일정만 보면 그런 관측이 빗나간 듯 하다. 이들은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간의 접점을 강조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정을 소화했다. 중국 견제 정책에 한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미국으로선 더 시급한 과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교부는 이날 강경화 장관이 방한 중인 크라크 차관과 스틸웰 차관보를 접견하고 “한미관계의 호혜적 발전 방안 및 역내 협력, 한일관계를 포함한 지역 정세 등 다양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스틸웰 차관보는 일본, 미얀마, 말레이시아, 태국을 거쳐 5일 한국에 입국했다. 크라크 차관도 태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마친 후 6일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강 장관과 두 사람 간 면담의 핵심 의제는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신남방정책 간 연계협력을 구체화해양국 협력을 더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스틸웰 차관보는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 관계와 동맹은 인도ㆍ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보의 핵심축(linchpin)”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겨냥한 군사적ㆍ경제적 견제가 목적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중국의 반발을 우려했지만, ‘경제 협력’ 측면에서 신남방정책과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연계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미국과의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협정문이 5일 태국 방콕에서 타결되자,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 관여를 정책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하는 보고서를 내며 적극 대응했다.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서 자국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어 크라크 차관은 SED에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최근 한미 양국이 시작한 ‘메콩지역 수자원 데이터 활용 역량강화 사업’ 등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교부는 “기존 양자간 긴밀한 무역ㆍ투자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우리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ㆍ태평양전략을 연계한 실질협력 방안을 분야별로 점검하고, 미래지향적 협력방안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이번 협의의 의미를 평가했다. 양국은 앞서 방콕에서 열린 외교차관보 회의에서 인도ㆍ태평양 전략과 신남방정책 간 협력 방안을 망라한 ‘설명서’(Fact Sheet)를 채택한 데 이어 6일 향후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를 채택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을 만나 양국 현안과 한일 관계를 포함한 지역 정세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틸웰 차관보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정석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도 만났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북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한미일 삼각 동맹’의 핵심이라고 여기는 만큼, 스틸웰 차관보는 지소미아 문제를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오기 보다는 한국의 입장을 경청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미국의 방점이 ‘중국 견제’에 찍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틸웰 차관보는 방콕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깜짝 환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이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는지를 주시하던 도중 나온 고무적인 신호(encouraging sign)”라고 평가했다.
한편 5일 방한한 드하트 방위비분담협상 대표는 주한미군 관계자를 만나는 등 비공식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3차 방위비 협상 회의에 앞서 한국 분위기를 살피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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