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자산 상속에도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50~60대 고령이 돼서야 노부모에게 상속을 받는 이른바 ‘노노(老老) 상속’ 비중이 국내에도 급증하면서, 자산 분쟁과 소비 둔화 등 각종 부작용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20년째 일본의 경제활력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노노 상속에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6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의 ‘고령사회와 상속시장 현황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세청에 신고된 과세 대상 상속 가운데, 80대 이상 피상속인(상속자산을 물려주는 이) 비중이 51.4%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70대(27.2%)까지 포함하면 전체 피상속인의 78%는 일흔살 이상이다. 이는 상속을 받는 자녀 대부분이 50~60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피상속인인 부모와 상속인인 자녀가 모두 고령층인 현상을 뜻하는 노노 상속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이웃 일본에서 확산됐다. 1998년 일본의 80세 이상 피상속인 비중은 46.5%로 최근 한국과 비슷하다. 지속된 고령화로 2015년 일본의 이 비율은 68.3%로 더 올랐다.

노노 상속은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고령층 안에서 상속 자산이 머물자, 일본은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주택 구입, 자녀 교육 등 수요처가 많은 30~40대와 달리, 고령층은 수입 없는 장기간의 노후를 걱정해 자산을 쌓아두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유의 현금 선호와 장기 저금리 기조 등이 겹치면서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이 돈을 집안에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는 ‘장롱 예금’ 현상이 나타났다. 또 고령층 치매 환자가 늘면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어 자산이 실질적으로 동결되는 이른바 ‘치매 머니’ 현상도 많아졌다. 심지어 사망한 치매 환자의 자식(상속인)도 치매 환자인 ‘인인(認認) 상속’ 현상까지 언론에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 손자녀로의 ‘생전 증여’를 장려하는 해법까지 내놓은 상태다. 2013년부터 증여 자산이 손자녀 교육비로 쓰일 경우 비과세 혜택을 부여했고, 2015년부터는 거주용 주택 신축ㆍ구입비나 결혼ㆍ출산ㆍ육아 비용 등에 대해서도 비과세를 실시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고령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자녀와의 상속 분쟁으로 남은 배우자의 거주권이 위협받고 급격한 생활고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상속인이 살던 집 한 채만 남기고 사망한 상태에서 자녀가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 주택을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남은 고령의 배우자는 ‘노인 빈곤’ 상태에 빠지며 사회보장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계청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2018년 기준 고령층(65세 이상) 비중은 14%, 고령층 가운데 치매 환자 비중은 10% 정도로 추산된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는 “고령화의 빠른 속도를 고려하면 경제ㆍ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생전 증여를 활성화하고 배우자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등 일본의 선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피상속인 연령대 분포. 그래픽=박구원기자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