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27> 구이저우 ③ 동남부 – 카이리ㆍ타이장ㆍ충장ㆍ리핑
구이저우성 스둥진에서 열리는 ‘자매반’ 축제에서 먀오족 아가씨가 은빛 찬란한 전통 복장을 뽐내고 있다. 그들은 ‘자매반’ 축제를 ‘동양의 밸런타인데이’에 비유한다.

구이저우성의 성도 구이양에서 검동남먀오족둥족자치주 카이리(凯里)까지는 3시간 걸린다. 자치주 인구 470만명 중 80%가 소수민족으로 먀오족(苗族) 200만명, 둥족(侗族) 140만명 가량이다. 먀오족 나라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먀오족은 좡족ㆍ후이족ㆍ만족ㆍ위구르족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다. 2010년 기준 약 950만명이다. 구이저우에 390만명으로 가장 많다. 후난 200만명, 윈난 120만명 등 주로 서남부에 산재한다. 신중국 성립 후 문화와 전통이 대체로 비슷한 민족은 다 묶었다. 먀오족이 모이는 축제에 가면 동네마다 전통 복장부터 사뭇 다르다. 먀오족도 수많은 갈래가 있다.

소수 중에 소수, ‘미식별민족’으로 분류된 거자족이 사는 풍향촌.
전통 복장의 거자족 여인들.

‘우리는 먀오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민족도 있다. 거자족(혁가족ㆍ 亻+革家族)이다. 가죽 혁(革) 왼쪽에 사람 인 변(亻)이 붙는 ‘혁’이다. 거자족은 검동남 일대에 약 6만명이 거주한다. 2015년 EBS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할 때 거자족이 사는 풍향촌(枫香村)에 갔다. 처음 보면 먀오족이랑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양인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먀오족과 달랐다. 56개 민족이 살아가는 중국에 거자족이라는 민족은 없다. 이를 ‘미식별민족’이라 분류한다.

전통 복장으로 환영 인사를 하는 ‘마당혁채’ 마을의 여인들.

신중국 성립 후 민족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미식별로 남은 민족은 59개나 된다. 당시 민족 사무를 담당하던 부서는 골치깨나 아팠을 듯싶다. 거자족도 독자적 ‘단일 민족’이거나 ‘먀오족 갈래’라는 관점이 동시에 존재했다. 1985년에 거주신분증이 생기며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신분증에는 민족 표기가 있다. ‘먀오족(거자)’, 먀오족 다음에 괄호로 거자족을 넣으라는 통지가 떨어졌다. 격렬한 항의와 협의 후 먀오족을 빼고 ‘거자런(亻+革家人)’으로 ‘독립’했다. 이렇게 민족 이름 대신 사람 ‘인(人)’으로 표기된 경우가 구이저우에 6개 민족이 있다. 59개 미식별민족 대부분 다른 민족 안에 귀속되거나 괄호로 표기되고 있다. 공식적인 소수민족 분류보다 더 많은 갈래다.

전통 복장을 한 마당혁채의 할머니들.
마당혁채 마을에서 열리는 전통 가무 공연.

카이리 북쪽 30분 거리에 마당혁채(麻塘革寨)가 있다. 최근 3년 사이 4번 방문했다. 구이저우를 갈 때마다 항상 찾는다. 그리고 꼭 공연을 본다. 미리 연락하면 전통 가무를 준비한다. 주민 모두 화려한 민족 복장을 하고 나온다. 대나무로 만든 황관악기(簧管乐器)인 루셩(芦笙)에 맞춰 환영 인사를 하고 춤을 춘다. 할머니는 합창으로 노래를 한다. 아가씨와 총각이 서로 발을 밟는 동작도 재미있다. 사랑싸움을 표현한다. 엄마 손 잡고 나온 꼬마도 신이 난다.

거자족 여성들이 전통 모자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활로 해를 떨어뜨린 예(羿)의 후예 거자족의 홍영모.

공연 마지막에 어린이ㆍ아가씨ㆍ어머니ㆍ할머니가 나란히 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림새를 설명한다. 빨간색 아가씨에서 하얀색 어머니로, 검은색 할머니로 모자 색깔이 변한다. 거자족은 회남자(淮南子ㆍ중국 전한의 회남왕인 유안이 편찬한 철학서)에 등장하는 사일영웅(射日英雄) 예(羿)의 후예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뜨자 인간을 구원하고자 활로 하나씩 떨어뜨리고 하나만 남겼다. 아가씨 모자는 붉은 술을 단 홍영모(红缨帽)다. 해를 상징하며 화살을 대신하는 비녀가 꽂혀 있다. 아이를 낳으면 하얀색으로 바뀐다. 달을 상징한다. 할아버지를 여읜 할머니는 검은색 테두리를 두른다.

자매반 축제가 열리는 스둥진.
천연 재료를 넣어 지은 오색 자매반.

카이리에서 동북쪽으로 2시간 이동하면 타이장(台江) 스둥진(施洞镇)이다. 이 일대 먀오족 마을은 음력 3월 보름이면 축제로 북적인다. 자매반(姊妹饭) 축제다. 깊은 산골인데 많은 관광객과 기자, 사진작가가 찾는다. 특별한 날에만 입는 은빛 찬란한 드레스, 성장(盛装)과 오색찬란한 밥을 먹기 위해서다. 다섯 가지 원색을 듬뿍 담은 찹쌀밥이다. 산이나 들에서 구한 재료를 넣는다. 우리 땅 재료로 번역해본다. 비름을 넣으면 빨갛게, 부들레아라 부르는 밀몽화를 넣으면 노랗게 된다. 모새나무 잎은 새까만 밥, 시금치를 넣으니 하늘색과 연두색을 혼합한 느낌,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흰 밥이다. 그렇게 밥을 지은 다음 하나로 모은다. 두세 가지 밥만 짓기도 하고 다섯 가지를 다 만들기도 한다. 색감도 마을마다 다소 다르다. 먀오족 복장이 아름답지만, 자매반도 예술이다.

스둥진의 자매반 축제 현장.
잎사귀에 싸서 손님에게 자매반을 대접한다.

아침부터 마을 초입이 복잡하다. 경찰도 출동해 질서를 찾느라 바쁘다. 자매반이 상에 오르고 은을 온몸에 두른 먀오족 아가씨가 뿔로 만든 잔을 들고 손님을 맞는다. 잎사귀에 밥을 담아 공손하게 대접한다. 카메라 세례가 장난이 아니다. 서로 앞에 앉으려고 경쟁이다. 언니와 여동생 자매가 만든 밥, 왜 만들었고 축제는 왜 하는가? 유래나 전설도 많다. 마을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래한다. 여기저기 모으니 자매반이 생긴 이유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마을에 자매만 살았다. 여러 이유로 ‘형제’ 없이 농사지은 자매는 다른 마을 총각을 초청해 밥과 술을 대접한다. 눈을 맞추기 위해서다. 스둥도 이런 자매반 축제 발원지 중 하나다. ‘동양의 밸런타인데이’라고 자랑한다. 그냥 ‘자매반 축제’가 맛깔스럽다.

색다른 전설이 있는데 그럴싸해 보인다. 먀오족 노래 중 자매절가(姊妹节歌)가 있다. 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금단(金丹)과 아교(阿姣)는 죽마고우로 자랐다. 서로 사랑하게 됐다. 먀오족은 딸을 외삼촌 집안에 시집 보내는 환낭두(还娘头) 전통이 있었다. 아교는 외삼촌 집 총각에게 시집가기 싫었고 금단도 마찬가지로 다른 아가씨랑 결혼할 수 없었다. 둘은 몰래 1년 이상 깊은 산에서 만났다. 아교는 만날 때마다 밥을 지어 나누어 먹었다. 은밀한 사랑은 감동을 끌어내 결국 부부가 됐다. 연인을 위해 몰래 지은 밥, 먀오족 말로 장반(藏饭)이 중국말로 변해 ‘자매반’이 됐다. 스둥진에는 먀오족 중에서도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아리따운 아가씨가 참 많다. 수수하고 순박한 인상과 화려한 전통 복장이 잘 어울리는 민족이 또 있을까?

파사묘채 마을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
파사묘채의 조각루.
파사묘채 조각루 거실에 놓인 화당.

동남쪽 충장(从江)에도 흥미로운 먀오족이 산다. 카이리에서 충장까지 200km, 다시 남쪽으로 좁은 산길을 20여 분 오르면 파사묘채(岜沙苗寨)다. ‘세계 최후의 총잡이 부락(世界上最后一个枪手部落)’이다. 두 번이나 찾았지만 총 쏘는 시범을 놓쳤다. 사람들이 총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많이 본다. 따로 보려면 좀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 총기 보유는 합법이다. 낫으로 머리를 빡빡 밀고 뒷머리만 장발로 기른다. 능선마다 산채를 두고 흩어져 살며 전체 500여가구가 산다. 경사진 골목에 노는 아이들도 이방인이 오면 재롱을 피운다. 1층에는 주로 동물이 살고 2층엔 거실과 침실이 있으며 3층은 곡식 창고다. 거실 가운데 불을 피우는 화당(火塘)이 있다. 이런 건축양식을 조각루(吊脚楼)라고 부른다. 구이저우 뿐 아니라 서남부 습기 많은 토양에 상당히 많다.

파사묘채 골목 풍경.
비가 갠 아침, 파사묘채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아주머니 여섯 명과 방문했을 때다. 오후에 도착하니 ‘동물의 왕국’ 그 자체, 가축이란 가축은 다 있다. 소ㆍ말ㆍ돼지ㆍ양ㆍ개ㆍ닭ㆍ새 모두 사람과 한 가족처럼 어울린다. 안타깝게도 사람만 화장실이 따로 있다. 천차만별 쏟아낸 배설물에 길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냄새가 거의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 모두 되돌아가자고 성화다. 일단 저녁 먹고 생각하자고, 너무 늦어 아침 일찍 떠나자고 달랜 후 잠을 잤다. 새벽 3시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눈 뜨자마자 폭풍처럼 산에서 내려갈 생각이었다. 뜻밖에 조용한 아침, 비는 그쳤다. 밖으로 나가니 세상에나, 천지가 개벽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대청소를 한 듯 깔끔해져 누구도 파사묘채를 떠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마을을 둘러보는데 전통 복장도 먀오족이라고 하기에 낯설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사묘채는 다른 먀오족 마을과 아주 다르다.

전망대에서 본 조흥동채 마을 전경.

검동남 끝에 자리 잡은 리핑(黎平)으로 간다. 동쪽으로 갈수록 먀오족 대신 둥족이 산다. 조흥동채(肇兴侗寨)는 정말 인연이 많다. 벌써 일곱 번이나 찾았다. 구이저우에 있는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아무 일 없이 그저 한 달 푹 쉬고 싶은 마을이다. 입장권을 사고 마을까지는 현지 차량으로 20분 더 들어가야 한다. 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다. 마을 입구 전망대에 오르면 전경이 드러난다. 둥족 8,000여명이 거주한다. 둥족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의견이 많다. 남방에서 왔으며 토착 세력과 융합해 둥족을 형성했다는 관점이 우세하다.

조흥동채의 하천과 풍우교.
조흥동채의 풍우교와 인단 고루.
조흥동채 고루의 조각과 문양.

둥족은 풍우교(风雨桥)와 고루(鼓楼)를 짓는다. 도랑 위에 다리를 놓고 지붕을 덮은 풍우교. 비 바람을 막아주며 쉼터이자 회의장이다. 조각과 문양이 어우러진 누각, 고루 역시 공동체 공간이다. 노래나 악기 연습도 하고 잡담도 한다. 풍우교가 낮다면 고루는 높다. 하천에 있을 필요는 없다. 조흥동채는 ‘고루 문화예술 고향’으로 칭찬받는다. 다섯 부분으로 마을이 나눠진다. 각 지역을 ‘단(团)’이라 하는데 인의예지신(仁义礼智信)으로 구분했다. 단마다 고루를 하나씩 세웠다. 인단에는 인루, 신단에는 신루가 있다. 동서로 길게 하천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가장 안쪽에 인루가 있고 입구에 신루가 있다. 신루가 25.9m로 가장 높고 지루가 14.9m로 가장 낮다. 고루 모습을 표지 삼아 마을을 둘러본다.

나무망치로 원단을 두드리는 모습.
염색 후 말린 두루마리 원단.
전통 복장을 한 둥족 아가씨.

1박 2일 묵으면 온종일 ‘딱~딱~딱~딱~’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엄청나게 예민한 사람만 아니면 금방 익숙해진다. 마치 오래전부터 들었던 소리처럼 정겨운 리듬이다. 나무 방망이로 옷감을 두드리는 소리다. 직조한 후 청색이나 진한 자주색 염료로 염색하고 햇볕에 말린다. 매끄러운 돌판 위에 놓고 반복해서 두드린다. 오래 두드려야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옷감이 탄생한다. 자수나 납염을 거쳐 덧붙이면 개성 넘치는 민족 복장이 된다. 원단이나 기성복을 파는데 꽤 비싸다. 도랑에서 염료를 만들고 염색된 원단을 빨래한다. 천연염료라도 도랑이 물들어가니 살짝 걱정이다. 말린 후 둥근 두루마리 원단으로 묶는 할머니를 가까이 바라본다. 주름과 손톱을 눈으로 어루만진다.

조흥동채 마을의 전통 공연.
조흥동채 마을의 전통 공연.
조흥동채 마을의 전통공연.
조흥동채 마을의 전통 공연.

밤에는 지단(智团) 옆 광장에서 무대를 연다. 적게는 몇십 명, 많으면 주민 모두가 부르는 합창 동족대가(侗族大歌)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여성이 부르면 청아하고 남성이 부르면 웅장하다. 들판에서 부르던 노래다. 안정감 넘치는 고음이어서 가슴을 울린다. 연인이 등장해 사랑을 노래한다. 여인을 차지하려는 속셈을 뿌리치고 복수도 있다. 농사짓고 수확하는 노동을 춤으로 보여준다. 휘황찬란한 전통복장을 입고 동족대가를 부른다. 관광객과 함께 손에 손잡고 한바탕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다. 무대가 끝나도 조명을 밝힌 고루는 그냥 그 자리에 남는다.

조흥동채의 고루. 물 그림자와 야간 경관 조명이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조흥동채의 술집에서 본 고루.
조흥동채의 인루와 풍우교 야경.

조흥동채에 그윽한 밤이 오면 오로지 고루만 빛난다. 도랑이 만든 작은 연못에 고루는 반영을 선물한다. 밤이면 더욱더 ‘값비싼’ 상품으로 바뀐다. 2000년대 초부터 유럽인이 찾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33곳’에 포함하기도 했다. 숨었던 술집도 드러난다. 갈 때마다 단골 술집을 찾는다. 창문 밖으로 의루가 보이는 2층 술집이다. 맥주를 마시며 라이브 가수 노래를 듣는다. 대중가요와 맥주가 호흡이 잘 맞는다. 도랑 따라 걸으면 인루와 풍우교가 ‘잠시 후 소등한다네. 인제야 귀가하는가?’라고 묻는다. ‘한잔 더 하고 싶은데’라고 대꾸해도 답은 없다. 귓전을 맴도는 동족대가 음률,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된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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