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톨킨’을 보면서 ‘반지의 제왕’의 진짜 매력이 그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마법’, 즉 그 누구도 함부로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는 따스한 마음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톨킨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톨킨’의 스틸 이미지. 폭스 제공

나는 ‘하드 캐리(hard carry)’라는 용어에 묻어 있는 깊은 피로감을 이해한다.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 팀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모두가 그 사람만 바라볼 때 하드 캐리의 당사자는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한 개인에게 집중적인 하드 캐리를 요구하는 팀은 결코 훌륭한 조직이라 보기는 어렵다. 수많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유난히 한 사람에게만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것도 그를 괴롭히는 무거운 부담이다. 하드 캐리의 당사자는 대부분 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 특히 남을 지배하려는 열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하드 캐리는 영웅적 호칭이 아니라 그저 무겁고 끔찍한 부담이 되곤 한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는 영화 ‘톨킨’을 보았다. 나는 이 영화가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을 하드 캐리의 주인공이나 눈부신 군계일학으로 만들지 않고 수많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젊은이로 바라보는 관점이 좋았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톨킨은 가난 때문에 고통받았지만 다행히도 외롭지는 않았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고 힘든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위대한 작가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환경이 ‘조건없는 우정’임을 깨달았다. 이 작품이 톨킨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예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톨킨의 따스한 감수성을 만들어준 일등공신이 바로 친구들의 우정이었음을 증언하는 이야기여서 더욱 좋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지 톨킨 한 사람이 아니다. 톨킨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성장시킨 그 주변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었다. 톨킨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전쟁을 통해 가장 사랑하는 친구 제프리를 잃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체험을 원초적 슬픔으로 껴안은 채 살아간다. ‘반지의 제왕’은 한 명의 영웅을 군계일학으로 만들기 위해 나머지 모든 인물을 엑스트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처음에 주인공 프로도는 이 거대한 작품을 이끌어가기에는 좀 모자란 아이, 지나치게 평범한 아이, 이 위대한 모험을 떠나기에는 부족한 아이로 느껴진다. 프로도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친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그토록 부족하고 결핍투성이인 프로도를 있는 그대로 더없이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다.

친구들은 프로도가 특별하거나 뛰어나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의 프로도, 조금 모자란 프로도를 아무 계산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혼자 보낼 수 없고, 혼자 죽게 할 수 없다. 가끔은 어설프고 대체로 어리숙한 이 친구 프로도를 따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멋진 친구 샘이 있기에 프로도는 진짜 영웅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세상에서 하루하루 그 모든 낯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영웅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프로도만의 ‘하드 캐리’를 추구하는 원맨쇼가 아니어서 진정 아름답다. 멋진 영웅이 혼자 장렬하게 자기 생을 던지고 비장하게 혼자 죽는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계속 이 세상의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라 더욱 감동적이다. 프로도가 잠시도 혼자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내는 친구들의 우정이 이 눈부신 스토리의 대장정을 이끌어가는 핵심적 동력이다.

나는 영화 ‘톨킨’을 보면서 ‘반지의 제왕’의 진짜 매력이 그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마법’, 즉 그 누구도 함부로 엑스트라로 만들지 않는 따스한 마음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톨킨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존 윅’이나 ‘테이큰’같은 무시무시한 하드 캐리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보다, 친구와 함께 있어, 누군가와 함께 있어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하드 캐리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 그것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너와 함께 한다면’이라고 속삭이는 친구를 한 명 갖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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