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 단지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40대 직장인 윤모씨는 서울에서 9억원 이하 분양단지가 나올 때마다 청약에 나선다.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씨가 도전하는 단지는 4인 가구가 살기엔 전용면적이 턱없이 작거나 ‘브랜드 아파트’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씨는 “요즘엔 강북에서도 분양가가 9억원 이상인데, 대출 가능 기준 9억원으로 선택이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집값이 18주 연속 오르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부가 규제 대상으로 삼는 ‘고가 주택’의 기준은 11년 전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장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서울에 국한된 현상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반대 논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11년째 ‘9억원’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소득세법에 근거해 ‘비싼 집’의 기준을 9억원으로 보고 있다. 소득세법 시행령 156조에는 ‘고가주택이란 주택과 딸린 토지 양도시 실거래가 합계액이 9억원을 초과하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돼 있다.

1999년 6억원으로 시작된 고가주택 기준은 2008년 9억원으로 상향조정된 이후, 11년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사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KB부동산 기준)이 5억1,000만원(2008년)에서 8억4,000만원(올해)으로 3억원 넘게 올랐지만, 비싼 집의 기준은 그대로인 셈이다.

최근 서울 집값 오름세까지 감안하면 이런 고가주택 기준은 더 무색해 진다. 강남권과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구)은 물론, 강동ㆍ동작ㆍ양천구 등의 10년 넘은 아파트도 9억원을 넘고 있다. 2013년 4억6,000만원이던 서울의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은 지난달 8억7,000만원까지 올라 내년 초 9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분기 전국의 9억원 초과 아파트 중 81.5%는 서울에서 거래됐는데, 서울의 9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 비중(28.7%)은 4억원 이하(19%)보다 10%포인트나 높다.

9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 비중 - 송정근 기자
 ◇세금, 대출 등에 엄격한 잣대 

집값이 9억원을 넘는 순간, 각종 불이익이 가해진다. 정부는 오는 11일부터 1주택자라도 집값이 9억원이 넘으면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한다. 보증서를 받으면 대출금리가 연 2.6~3.2%지만, 무보증 전세대출은 4% 중반대로 차이가 크다.

청약시장에서도 분양가가 9억원을 넘기면 HUG 분양 보증을 받을 수 없어 대출이 제한된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10% 수준이던 서울의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 비중은 올해 절반(48.8%)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는 분양가의 60% 수준인 중도금을 직접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정부의 '안심전환대출'에서도 9억원 이상 아파트는 제외됐다.

주택 거래시 세금도 높다. 취득세율 3%(6억원 이하는 1%, 6억원 초과~9억원 이하는 2%)가 적용되고, 중개수수료 역시 최고 요율(0.9%)을 적용 받는다.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다.

 ◇”높여야 vs 안된다” 공방 치열 

때문에 고가주택의 기준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11년 전 서울에서 9억원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부자였지만 요즘은 중간 수준이 됐다”며 “고가주택의 개념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성헌 직방 매니저는 “서울의 아파트 매매시장이 점차 고가 아파트 중심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어 향후 정책 수립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민은 평생 9억원을 모으기 어려운데다, 집값 급등은 서울에 국한된 현상인 만큼 기준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 집값은 떨어진 경우도 있어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질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기준을 높이는만큼 걷히는 세금이 줄어들 수 있다”며 “차라리 고가주택 기준은 그대로 두고 중도금 대출기준 완화 등으로 무주택자의 숨통을 틔워주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