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 전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는 스페인 카탈루냐주 페네데스의 포도밭 풍경. 페네데스 홈페이지 캡처

카탈루냐가 심상(尋常)하지 않다.

와인 애호가이자 탄산 애호가인 필자로서는 ‘카탈루냐’라는 말만 들어도 자연스레 스파클링 와인이 떠오른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할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 까닭을 곰곰이 추적하니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엄마를 못마땅해 했다. 엄마는 숱한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할머니와의 갈등을 풀 방법을 찾았다. 해결책은 콜라였다. 할머니는 콜라를 좋아했는데, 콜라에 밥을 말아 드셨을 정도다. 엄마는 콜라 마니아인 할머니에게 주기적으로 콜라를 선물하면서 돌파구를 찾은 셈이었다.

며느리는 미워했지만 손주들은 끔찍이 사랑한 할머니는, 당시로서는 귀한 콜라를 딸 때면 어김없이 손주들 밥그릇에 따라주셨다. 기포가 터지면서 황톳빛 거품이 환호성처럼 솟아올랐다. 거품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목으로 넘기는 콜라가, 나는 마냥 짜릿하고 좋았다. 콜라보다 더 시커멓게 타버렸을 엄마의 가슴은 정녕 모른 채, 나는 그 뒤로 탄산 음료에 빠져들었다.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도 당연하다는 듯 스파클링 와인에 끌렸다. 그러니, 카탈루냐 소식을 접한 순간 마개를 딴 병 속의 기포가 솟구치듯 그 오랜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카바 생산의 양대 축인 코도르뉴와 프레시넷에서 생산하는 와인. 코도르뉴는 스페인 국내 생산 1위, 프레시넷은 세계 판매량 1위 카바 브랜드이다. 왼쪽부터 프레시넷의 코든 네그로 브륏(Corden Negro Brut), 카르타 네바다 세미 세코(Carta Nebada Semi Seco), 코든 로사도 세코(Cordon Rosaso Seco)와 코도르뉴의 카바 클라시코(Codorniu Clasico cava), 안나 드 코드르뉴(Anna de Codorni

각설하고, 스파클링 와인은 나라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프랑스의 샴페인과 크레망, 이탈리아의 스푸만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젝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캡 클라시크. 그리고 포도밭 면적 세계 1위, 와인 생산 세계 3위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카바.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다. 와인에 탄산가스를 직접 주입해 만들거나 큰 통에서 2번 발효하여 만드는 방법, 샴페인처럼 1차 발효가 끝난 와인을 병에 넣고 또 한 번 발효시켜 병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키고는 데고르주망 방식으로 효모침전물을 제거하여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앞의 두 방법은 단순 공법으로 짧은 시간에 와인을 만들지만, 뒤의 방법은 여러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와인을 완성하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당연히 맛과 풍미가 다르고 기포의 섬세함도 다르다. 가격 차이도 크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든 샴페인은, 미각을 충족시켜주지만 동시에 지갑을 얇게 만든다.

그러나 대안은 있다.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샴페인보다 숙성 기간이 조금 짧고, 기계화로 대량 생산하는 스페인의 카바가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값에 좋은 기포와 풍미를 즐길 수 있기에 카바를 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샴페인이라고도 한다.

사실, 카바는 첫 생산 이후 100년이 넘는 동안 ‘샴페인’이란 이름으로 팔렸다. 그러다 1986년 카탈루냐어로 지하 저장고를 뜻하는 카바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프랑스 상파뉴(샴페인의 발생지이자 이름의 연원이 된 곳)에서 원산지 보호를 위한 제소를 했기 때문이다.

코도르뉴.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1872년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카바를 생산했다. 이 아름다운 와이너리는 가우디와 함께 카탈루냐 3대 건축가로 꼽히는 조세프 푸이그 이 카타팔치Josep Puig i Catafalch가 설계한 것이다. 1976년 스페인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위키미디어 제공

카바는 그 탄생부터 샴페인과 관계가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인 코도르뉴는 1551년부터 와인을 만들어왔다. 1872년 코도르뉴의 소유주 호세프 라벤토스는 프랑스 상파뉴에서 샴페인 양조법을 배웠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스페인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고, 곧이어 카탈루냐의 바로셀로나 남쪽에 위치한 페네데스를 중심으로 여러 생산자가 카바를 출시했다. 오늘날에도 카탈루냐는 카바의 주생산지로, 전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토종 품종인 마카베오, 사렐로, 파레야다를 블렌딩해 만든 카바는 숙성 기간에 따라 호벤, 레세르바, 그란 레세르바로 등급이 나뉜다. 로제 카바는 적포도 품종인 가르나차, 피노누아, 트레파, 모나스트렐 등으로 만든다. 일부 생산자는 토종품종 외에 샤르도네, 피노누아를 블렌딩해 카바를 만들기도 하고, 2017년에는 ‘카바 데 파라헤 칼리피카도’, 즉 단일 포도밭에서 만든 최고급 카바 등급도 신설됐다.

카바는 숙성 기간에 따라 호벤(Jovenㆍ9개월 이상), 레세르바(Reservaㆍ15개월 이상),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ㆍ30개월 이상)로 등급이 나뉜다. 2017년, 울트라 프리미엄 카바 등급인 카바 데 파라헤 칼리피카도(Cava de Paraje Calificado)가 신설되었다. 왼쪽부터 로저 구라트의 호벤(로제 카바), 레세르바, 그란 레세르바. 로제 레세르바, 로제 그란 레세르바. 와인수입사 와이넬 제공

샴페인 방식, 즉 전통방식으로 만든다 하여 ‘메소드 트라디시오넬’이란 말이 적혀 있는 카바는 결코 가난하지 않은 향과 맛을 품고 있어 애호가들에게 부담없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니, 카바의 고장 카탈루냐가 심상(尋常)하면 좋겠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다른 지방과는, 역사는 물론 문화와 언어까지 다르다고 한다. 마치 가족으로 묶였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할머니와 갈등했던 엄마가 그러했듯, 그들도 뜻밖의 ‘스파클링’한 해결책을 찾기를. 묵은 갈등 탓에 속이 까맣게 탄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기를.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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