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는 지난 9월말 “우리를 믿지 마세요.”라는 칼럼을 일간지에 실었다. 이 칼럼에는 권력과 야합하는 검찰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임은정 ‘검사’의 “우리(검사)를 믿지 마세요.”라는 말은 거짓말쟁이 역설과 정확히 똑같은 재귀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형식 논리의 모순을 뛰어넘어 검찰 개혁을 바라는 그의 진정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사진은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전현직 검찰 고위인사 직무유기 혐의 고발건과 관련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9월 20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아주 유명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다. 이 말이 역설인 이유는 에피메니데스가 바로 크레타 섬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진실이면 에피메니데스 자신도 거짓말쟁이이므로 모든 크레타인이 거짓말쟁이인 것은 아니게 되어 이 진술은 거짓이 된다. 한편 이 말이 거짓이라면 어떤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므로 적어도 한 명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모순은 피할 수 있다.

이보다 좀 더 완벽한 역설이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다. 가령 내가 “이 칼럼은 거짓말이다.”라고 썼다면 딱 맞는 사례이다. 이 진술이 참이라면 전체 칼럼이 거짓말이므로 이 칼럼이 거짓말이라는 말조차 거짓이 되어 이 칼럼은 참이어야 한다. 반대로 이 진술이 거짓이라면 이 칼럼은 참이어야 하고 따라서 이 칼럼은 거짓말이라는 진술도 참이어야 한다. 즉, 이 진술이 참이든 거짓이든 모두 모순에 이르게 된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 이런 자기 모순이 20세기 수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관계가 있다. 불완전성 정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공리 체계라도 모순이 없으면서 동시에 모든 명제를 증명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할 수는 없으며, 그 체계 안에서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불완전성 정리에 등장하는 명제(G라 하자)는 “이 명제는 증명할 수 없다.”이다. 만약 명제 G를 증명할 수 있다면 이 문장은 증명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으므로 G는 거짓이다. 그러나 G를 증명했다는 것은 G가 참이라는 말이다. 즉, 명제 G는 참이면서 거짓인 모순에 빠지게 되어 참ㆍ거짓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결국 G는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되는데, 이는 정확히 명제 G가 주장하는 바이다. 따라서 G는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된다.

크레타 섬의 거짓말쟁이가 문득 떠오른 것은 ‘조국 대전’의 와중에 검찰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한 임은정 검사 때문이었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 9월말 “우리를 믿지 마세요.”라는 칼럼을 일간지에 실었다. 이 칼럼에는 권력과 야합하는 검찰의 추악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임은정 ‘검사’의 “우리(검사)를 믿지 마세요.”라는 말은 거짓말쟁이 역설과 정확히 똑같은 재귀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형식 논리의 모순을 뛰어넘어 검찰 개혁을 바라는 그의 진정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이 장관직을 물러나기 전에 여러 개혁안을 냈고 검찰 스스로도 자체 개혁안을 많이 냈지만 결국은 기존 체계 내에서의 몸부림일 뿐이다. 검찰의 이른바 ‘셀프 개혁안’에 평가할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아마도 검찰 내부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윗선의 눈치를 보지 말라.”

‘윗선’의 이런 지시 사항은 다시 한 번 거짓말쟁이의 역설로 귀결된다. 또는 검찰 내부의 자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감찰 단위를 만들자며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검찰 스스로가 수사하지 못하는 사건만 수사하라.”

만약 검찰 내부의 비리 사건이 터졌다면 어떻게 될까? 통상적으로 검찰 내부 비리는 스스로가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사건(김학의 사건처럼)일 테니 새 조직이 수사를 시작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새 조직도 어차피 검찰 내부의 조직이니까 결국 검찰 스스로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이 된다. 즉, 사건을 수사하는 순간 수사하지 못하는 사건이 된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하지 못하는 사건은 새 조직이 수사해야 하는 사건이므로 결국엔 순환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는 버트런드 러셀의 유명한 이발사 모순(자기 머리를 깎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주는 이발사의 머리는 누가 깎는가 하는 문제)과 닮았다.

한국의 현실에서 보자면 우리의 검찰 체계는 무모순성이나 완전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물론 괴델의 정리를 현실의 사법 체계에다 무리하게 끌어들여 적용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권력이 집중된 지금 검찰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검사에 대한 기소율이 0.13%라는 기록적인 통계가 단적인 사례이다. 이 숫자에는 다소의 과장과 허수가 끼어 있겠지만 김학의 사건에서 보여 준 질적인 충격은 정량적인 수치로 환산조차하기 어렵다.

묘하게도 이 사실은 범죄를 수사해야 할 검사들 자신의 범죄 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재귀적이다. 앞선 모든 역설의 특징이 진술 내용이 그 자신을 향하는 재귀적 성질을 갖고 있음에 주목하자. 만약 검사가 저지른 범죄를 검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수사할 수 있다면 적어도 검찰이 스스로의 범죄를 수사할 때 생기는 역설이나 난점을 피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즉 공수처가 그래서 꼭 필요하다. 검사들에게도 세상 무서운 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편안해지고 정의가 바로 선다.

언론도 비슷하다. 지면 관계상 길게 말하는 대신, 한국일보라는 ‘언론’을 통해 임은정 검사의 표현을 빌려 짧은 역설만 하나 소개하려 한다.

“언론을 믿지 마세요.”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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