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관광지 제1호 동해 무릉계곡 트레킹
강원도라도 다 같은 강원도가 아니다. 10월 초부터 설악산 단풍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제 끝났으려나 싶지만, 날씨가 따뜻한 해안지역은 이제 단풍이 절정이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명승지, 동해 무릉계곡의 지난 주말 풍경을 소개한다.
동해항에서 불과 10km 떨어진 무릉계곡은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3m) 자락에서 가파르게 흘러내린 계곡으로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뤄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된 곳이다. 무릉계곡이라는 명칭은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로 재직했던 김효원이 지었다고 한다.
산은 험하지만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2.6km 계곡 탐방로는 폭이 넓고 비교적 순탄하다. 매표소(입장료 성인 2,000원)를 통과하면 바로 삼화사가 나온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라 소개하지만 말끔하게 단장한 절 집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찾기는 어렵다. 대신 사찰 아래 넓은 바위에 옛 풍류객의 흔적이 무수히 남아 있다. 바위는 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약 4,960㎡(1,500평)로 무릉반석이라 부른다. 그 반석 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다녀간 사람과 단체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요즘으로 치면 ‘인증샷’ 명소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초서로 쓴 열두 글자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은 훼손 위기에 처해 탐방로 옆에 따로 모형으로 제작해 놓았다. 각각 유불선의 철학을 담고 있는 어휘로, 강릉부사 양사언과 삼척부사 정하언이 재직 기간에 썼다는 설이 분분하다.
삼화사를 지나면 탐방로는 계곡과 잠시 멀어진다. 발 아래로 물소리는 끊임없이 들리는데 주변은 온통 참나무 숲이다. 수북하게 쌓여 가는 낙엽이 푹신푹신하다. 바위를 밟을 때는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쌍폭포를 약 300m 앞둔 지점부터 탐방로는 다시 계곡으로 접어든다. 주변 단풍도 화려하게 물이 올랐다.
쌍폭포는 두타산의 가파른 능선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로 이름대로 두 개의 물줄기가 한 개의 소를 이루며 떨어진다. 규모는 웅장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데, 곱게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은은한 기품이 느껴진다. 바로 위 용추폭포는 병풍처럼 둘러진 절벽 한가운데에서 한줄기로 떨어진다. 주변 바위가 웅장해 폭포는 오히려 왜소해 보인다. 폭포 바로 아래 계곡 단풍이 절정이다.
내려올 때는 주 탐방로에서 옆길로 빠져 무릉계곡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소 ‘하늘문’을 거쳤다. 갈림길 이정표에 300m라고 표시돼 있지만 체감 거리는 1km 이상이다. 계곡을 건너면 곧장 가파른 철제 계단이고, 여기가 끝인가 싶으면 본격적으로 수직에 가까운 300여 계단이 이어진다. 이름 그대로 하늘로 오르는 계단이다. 계단은 꼭대기 두 개의 암반 사이에 얹힌 커다란 바위 아래를 통과한다. 바로 ‘하늘문’이다. 하늘문 위에 오르면 그제야 시야가 트이고 계곡 맞은편 우람한 바위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하늘문 아래 계곡은 ‘피마름골’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전사자들의 핏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 처절한 이야기를 뒤로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오니 커다란 나무 밑동 부근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등산객이 주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상황에 익숙한 듯 도망가지도 않고 코앞에서 비스킷을 갉아 먹는다. 길들여진 야생이 신기하면서도 안타깝다.
무릉계곡 산행을 위해 하루 묵을 요량이면 계곡 초입의 ‘동해 무릉건강숲’이 괜찮다. 동해시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한국관광공사에서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한 시설이다. 숙소 외에 찜질방과 자연식 건강 식당, 어린이 건강 체험관 등을 갖추고 있다.
동해는 계곡과 함께 동굴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시내 한가운데에 천곡동굴이 있다. 1991년 신시가지 개발 도중 발견된 동굴로 현재 700m 구간에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종유석의 규모와 형체가 다른 지역 동굴에 비해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시내 중심에 위치해 부담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논골담길’은 해변과는 다른 ‘감성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강소형 잠재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지만, 이미 동해의 대표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묵호항에서 오징어를 져 나르며 질퍽거리던 골목마다 옛 이야기가 그득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마다 예쁜 카페가 들어 서 있다.
동해=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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