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가 뜬다 
[저작권 한국일보] 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아이디어스 크래프트하우스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알파고 시나시씨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금요일이었던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호프집. 남자 한 명이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10분 간 코미디를 선보였다. 특별한 무대장치는 없다. 개그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장이나 우스꽝스런 복장도 준비하지 않았다. 자신을 코미디언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관객 혹은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착각할 법하다. 마이크 하나만 들고 좌중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었다.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글로벌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지난달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를 공개하는 등 여러 콘텐츠가 나오며 대중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KBS2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소개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스탠드업’을 16일 방송할 예정이다.

국내 스탠드업 코미디 전문 무대는 아직 서울 서교동 코미디헤이븐쇼 한 곳뿐이다. 1일 공연장을 찾은 관객 30여명 중 다수는 입소문만 듣고 이곳을 찾았다. 유명 코미디언은 없지만, 무대에 오른 스탠드업 코미디언 7명 모두 입담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부터 시작해 성(性)과 연애, 심지어 한국 귀화시험에 이르기까지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방송에선 불가능한 비속어도 능수능란하게 내뱉는다. 당연히 미성년자 관람 불가다. 관객들은 공연 100분 간 웃음을 터뜨리기 바빴다. 친구들과 함께 코미디헤이븐쇼를 찾은 김승훈(44)씨는 “코미디 공연이 열리는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정말 웃겼다”며 “한국에서 이런 공연을 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2년 전부터 주목받았다. 케빈 하트 등 해외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무대가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 때다. 방송인 유병재이 때마침 스탠드업 코미디인 ‘블랙코미디’ 공연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그해 스탠드업 코미디 전문회사 스탠바이스튜디오가 문을 열었다. 코미디헤이븐쇼를 주최하는 코미디얼라이브의 전신이다. 코미디얼라이브 대표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정재형(31)씨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폐지되는 등 지상파 방송 개그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다”며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정재형씨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이디어스 크래프트하우스에서 스탠드업코미디언들이 이날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화려한 입담만큼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력도 다양하다. 2014년 KBS 공채로 데뷔한 정씨처럼 코미디언도 있으나, TV 출연과 무관했던 사람들이 훨씬 많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동하(33)씨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었다. 지난해 6월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진 원로 코미디언 전유성씨 밑에서 코미디를 배웠다. 김씨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 번 빠지면 쉽사리 헤어나오기 어려운 장르”라며 “관객을 웃기는 데 실패하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지만, 반대로 무대를 지배하는 데 성공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TV에선 아직 스탠드업 코미디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개그 수위가 높은 탓이 크다. 마음의 준비를 해도 ‘헉’하고 놀라는 순간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성역이 없다는 게 스탠드업 코미디의 특징이이다. 관객에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1일 공연을 관람한 박호준(28)씨는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방문했는데, 박수를 치는 등 코미디언과 교감을 할 수 있어 즐거웠다”며 “해외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 적이 있지만, 문화적인 코드는 한국 공연이 더 잘 맞았다”고 말했다.

불상사도 종종 생긴다. 공연 도중에 야유를 보내고, 심지어 욕설을 내뱉는 경우도 있다.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논쟁을 벌이려는 관객도 존재했다. 자신의 상식과 맞지 않는 이야기로 코미디를 한다는 이유다. 정씨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각자 개성이 강하기에, 모두를 웃길 수 없다”며 “페미니즘이나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코미디의 맥락과 관계없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원화 시대니만큼 코미디 하나로 모두를 웃기긴 불가능하다. 그러나 쇼에 출연하는 여러 코미디언 중 본인 취향 한 명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김동하씨가 최근 서울 마포구 아이디어스 크래프트하우스에서 공연하고 있다. 코미디헤이븐 제공

주변 시선도 걸림돌이다. 주로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찾다 보니, 도발적인 농담에는 마음껏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센’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관객 요구에 맞춰 코미디 수위를 높일수록, 호응은 되려 줄어들게 되는 딜레마다. 미국에서 2001년부터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다 2년 전 한국으로 온 대니 조(37)씨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관객 호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장에선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있다가, 끝나고 나서야 정말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남기는 사람이 많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나눴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착각이다. 박나래조차 “코미디얼라이브쇼를 보고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를 잘할 수 있을까 겁먹었다”며 쩔쩔 맬 정도였다. 조씨는 “불과 2년 만에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가 이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면서도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 테크닉이 중요한데, 이를 간과하다 코미디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탠드업 코미디 하나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자신만의 개성을 투영해야 하기에 작가 등 남의 도움 없이 홀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무대에서 한 차례 선보인 뒤에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대본을 계속 수정해 나가곤 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쇼마다 매번 새로운 코미디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정씨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완성된다는 말이 있다”며 “계속해서 대본을 고치고 표정을 바꿔가면서 하나의 개그 세트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대니 조씨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이디어스 크래프트하우스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아마추어라고 지레 겁먹는 것은 금물이다. 어려운 만큼 희열도 크다. 코미디얼라이브는 아마추어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위해 매주 ‘오픈 마이크’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무대에 올라 자신의 개그를 선보일 수 있다. 대신 관객의 싸늘한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김씨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라며 “코미디를 하기도 전에 제풀에 실실 웃는 경우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조커’(2019)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올라 우는 듯 웃고, 웃듯이 울던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의 빠른 성장세는 독이기도 하다. 자리를 잡은 지 고작 2년인데,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해외 코미디와 비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미디언들은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정씨는 “주변에선 스탠드업 코미디 ‘붐’이 올 것 같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당분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미국은 동네 술집마다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가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지만, 한국은 아직 불모지”라고 밝혔다. 조씨도 “넷플릭스에 출연하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모두 10년 이상 경력자”라고 말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관객에게 편견을 버려달라고 부탁한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팔짱을 낀 자세가 아닌,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달라는 것이다. 조씨는 “한국에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빌 버처럼 해야 해, 유병재나 박나래처럼 해야 해’라는 선입견이 있다”며 “코미디언 수만큼 스타일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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