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내한하는 연출가 이보 반 회바의 연극 '로마 비극' 속 한 장면. 상영시간이 330분으로 길지만, 관객은 객석과 무대, 공연장 밖을 오가며 극을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배우들 뒤로 옅게 보이는 이들이 관객이다. LG아트센터 제공

#1. 정치가들이 모여 시국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친다. 분위기가 한껏 끓어 오르자 다른 주장으로 맞서는 이들끼리 멱살을 잡고 육탄전을 펼친다. 다른 한 쪽에선 시민들이 시국을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방송 뉴스 화면과 전광판이 지속적으로 장면과 문구를 바꿔댄다. 세계적 연출가 이보 반 회바가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레이너스’와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만든 연극 ‘로마 비극’ 장면이다. 극은 200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되며 세계 공연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참신한 내용과 더불어 기존 공연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 형식 때문이었다. ‘로마 비극’의 상영 시간은 5시간30분. 2시간 안팎인 보통 연극보다 2배 넘게 긴 시간이다.

#2. 지난 6월 서울 삼일로창고극장. 연극 연출과 연기에 관심 있는 12개 참가팀이 제비뽑기를 시작했다. 단 24시간 만에 작품을 만들어 올리는 ‘24시간 연극제’의 시작이다. ‘변신’ ‘길 위에 서다’ ‘회피형’ ‘말’ 등 주제가 제비뽑기로 결정됐다. 하루 만에 무대와 대사, 연기, 의상을 모두 완성해야 하지만 작품성은 기존 연극 못지 않았다는 게 공연계의 평이다.

'로마 비극' 속 한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공연계에 ‘시간 금기’를 깨려는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보통 2~3시간으로 고정된 극의 상영 시간을 늘려 관객에게 복잡한 메시지를 체험하듯 전달하려는 극이 국내 무대에 올려지는가 하면, 단 하루 만에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기획이 현실화 되고 있기도 하다.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는 ‘로마 비극’은 상연 시간이 긴 만큼 공연의 여러 규칙을 바꿔놨다. 긴 공연 중간에 있기 마련인 ‘인터미션’(쉬는 시간)이 없다. 대신 관객은 일정 시간대에 원하는 대로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감상할 수 있다. 원하는 때에 공연장 밖에 나가 휴식을 취하거나 무대 위에 마련된 바(Bar)에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도 있다. 회바 연출가는 “휴식 없이 이어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이 세계의 정치를 반영하고 있다”며 “역사적 서술보다는 이야기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 메커니즘에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24시간 연극제' 참가자들은 주제어를 제비뽑기해 24시간 만에 작품 한 편을 완성해내야 한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반대로 ‘24시간 연극제’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상영시간이 작품 당 15분 이내로 짧다. 주어진 제작 시간이 24시간뿐이어서이기도 하나 배우 및 연출가와 관객이 집약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이러한 형태의 연극제는 미국, 핀란드, 독일 등에선 익숙하게 접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지난해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처음 시도됐다. 여러 주제의 작품을 삼일로창고극장 내 공연장, 스튜디오, 야외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관객 호응이 좋다.

지난해 서울 삼일로창고극장에서 '24시간 연극제'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공연계 반응도 뜨겁다. 지난 6월 진행된 그룹편 모집 당시에는 접수 시작 1분 만에 정원(총 12개팀, 68명)이 마감됐을 정도다. 이달 20일부터는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이들이 무작위로 팀을 꾸려 극을 만들어 올리는 개인편도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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