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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테러리스트 후사코의 혁명의 낙관(11.8)

입력
2019.11.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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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좌파 테러조직 일본적군(JRA)의 리더 시게노부 후사코가 20여년 수배 끝에 2000년 오늘 체포됐다. alchetron 사진
일본 좌파 테러조직 일본적군(JRA)의 리더 시게노부 후사코가 20여년 수배 끝에 2000년 오늘 체포됐다. alchetron 사진

일본 좌파 무장조직 적군파의 한 분파로 레바논에 거점을 두고 1970년대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과 함께 국제 테러를 일삼은 일본적군(JRA)의 리더 시게노부 후사코(重信房子, 1945.9.28~)가 2000년 11월 8일 일본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체포됐다. 그는 74년 헤이그의 프랑스 대사관 인질사건 등에 연루된 혐의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아왔지만, 20년 넘게 체포되지 않았다. 도쿄로 압송된 그는 기자들 앞에서 수갑 찬 손으로 엄지를 세워 들며 “나는 계속 싸울 것”이라고 외쳤다. 그는 2006년 3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일본 패망 직후인 45년 9월 도쿄 세타가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차 대전 후 일본 남부 규슈에서 사찰 부속 빈민 학교인 테라코야(寺子屋)에서 교사로 일했고, 2차 대전 땐 만주 주둔 제국군 장교(소령)로 복무했다. 후사코는 고교를 졸업한 뒤 간장으로 유명한 기코만 사에서 일하며 메이지대 야간학부에 등록해 역사와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60년대는 일본 좌파 학생운동의 전성기였다. 그는 노동자 출신이라는 ‘신분적 우위’와 탁월한 리더십으로 금세 진영의 리더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몇몇 핵심 활동가와 함께 71년 2월 중동 레바논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들은세계 혁명을 위해선 국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미국-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러온 중동은 좋은 거점이었다. 마오주의에 경도된 국내파 연합적군과의 알력도 있었다. 그들이 떠난 뒤인 72년 겨울 저 악명 높은 ‘아사마 산장 사건’이 발발, 14명이 내부 권력투쟁에 밀려 살해됐다. 그 사건으로 국내파는 사실상 소멸했고, 일부는 후사코 휘하로 흡수됐다. 후사코의 일본적군은 하나의 독립적인 조직으로서 PFLP와 함께 72년 이스라엘 로드공항(현 벤구리온 공항) 총격 사건 등을 주도하며 국제적인 악명을 떨쳤다.

후사코는 2008년 12월 결장암 진단을 받고 세 차례 수술 끝에 회복돼 현재 하치오지 병동 감옥에 수감돼 있다. 후사코 혁명의 미래를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6월 ‘재팬타임스’ 인터뷰에서 옥중의 그는 “물질적 면에서 혁명의 기운은 이미 무르익었다. 인간성이 지속적으로 부정되다 보면 인도주의자들의 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나는 사후에라도 축배를 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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