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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고용 불안ㆍ부실한 상담 공간… 자살 방지 돕는 관리요원들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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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고용 불안ㆍ부실한 상담 공간… 자살 방지 돕는 관리요원들의 한숨

입력
2019.11.05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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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르바이트 사회복지사?”

올해 2월부터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자살시도자 사례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A(30)씨는 최근 병원 원무과에서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모욕감을 느꼈다.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하고 있어 계약직 직원으로 알았는데 ‘알바’취급을 당했다는 걸 확인하게 돼서다. 그는 “자살시도자를 돌보는 일이라 보람을 갖고 일했는데 실망스럽다”며 “병원에서 찬밥신세로 지내느니 차라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서 응급처지를 받은 자살시도자들을 대상으로 전화나 대면상담 등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도록 조력해 주는 사례관리자들이 불안정한 신분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 악전고투하고 있다. 2013년부터 보건복지부의‘응급실 기반 자살관리자 사후관리사업’에 따라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례관리자들은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을 찾은 자살시도자의 동의를 얻어 상담을 하고 환자 퇴원 시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에 연계한다. 정신건강전문요원, 정신보건임상심리사·정신보건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등이 사례관리자로 활동하는데 현재 62개 병원에서 128명이 근무하고 있다. 복지부가 2018년 사후관리를 4회 이상 받은 3,999명 대상을 조사한 결과, 1회 접촉 시 자살 위험도가 ‘상’이었던 자살시도자 567명(15.6%)이 4회 접촉 시 231명(6.3%)으로 감소할 정도로,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사례관리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사업예산은 2013년 12억5,000만원에서 올해 63억2,000만원으로 4배 이상 늘었지만, 이들은 계약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례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B(38)씨는 “2년 넘게 병원에서 근무했지만 정규직은커녕 계약이 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병원들이 1년 6개월, 2년 등으로 계약을 한정한 병원들도 많아 계약이 만료되면 계속 근무를 하고 싶어도 그만두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의 급여체계가 정신건강사업법에 따라 연공급인 호봉제(1~31호봉)로 돼있어 한정된 예산으로 이 사업을 진행하는 병원들이 숙련된 사례관리자들과의 재계약을 꺼리는 점도 문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사례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C(36)씨는 “보통 한 병원에 2,3명이 근무하는데 호봉이 높은 사람이 있으면, 병원은 함께 일할 직원을 신입으로 뽑는다”며 “숙련된 동료들은 병원에 ‘내 호봉을 동결시켜달라’고 요구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C씨는 “지난달 설리 자살사건을 모방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20대 여성이 찾아왔는데 사례관리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며 “보람이 있는 일이지만 숙련도가 높은 인력이 일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소속 직원이 아닌 탓에 병원들은 상담공간 관리에도 소홀하다. 경기도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례관리자 D(38)씨는 “별도 상담공간이 없어 응급실 내 격리실에서 퇴원환자 상담을 하다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항의를 받고 쫓겨나 샤워실에서 상담을 한 적도 있다”며 “상담실이 있지만 창문이 없어 벽에 창문을 그려놓고 업무를 하는 사례관리자들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전적으로 병원에서 이들을 관리하고 있어 정부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며 “사업예산에 사례관리자들의 처우와 근로환경개선을 반영토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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