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의 뒷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한 3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해당 판결문에 문제의 무단 촬영 사진을 실은 것으로 나타나, 법조계에서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 측에서는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판결문의 열람ㆍ복사 제한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부(부장 오원찬)는 지난달 24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1심과 달리 그의 공소사실을 죄로 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고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통용되고 있는 만큼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ㆍ무죄 논란과 별도로 재판부가 사건 당시 A씨가 촬영한 피해 여성의 뒷모습 사진을 판결문에 실으면서 문제가 됐다. 재판부 입장에선 판단 근거를 한 눈에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이 사진을 판결문에 이미지로 실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 촬영으로 심리적 충격이 컸을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피고인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들이 판결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무단 촬영 사건에서 피해자 사진을 판결문에 게재하는 게 이례적일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2차 피해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피해자 측 변호를 주로 맡아온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얼굴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내 신체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또 성적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피해자는 매우 불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범죄 사건의 경우 2차 피해가 소송전반에 걸쳐 발생하는데, 판결문에 피해자 사진을 게재하는 것 역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재판부가 판결 자체뿐만 아니라 판결문을 구성하는 측면에서도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측 또한 강하게 반발했다. 이 사건 피해자 변호를 맡은 법률사무소 새벽의 양영훈 변호사는 “통상 판결문에서는 ‘증거목록 몇 번 휴대폰 영상에 의하면’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 사건은 판결문에 직접 사진을 첨부해 매우 이례적”이라며 “반드시 사진이 필요한 경우도 아니라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이번주 중으로 판결문의 열람복사 제한을 법원에 신청할 예정이다.
덧붙여 양 변호사는 일단 한 번 등록된 판결문은 공문서로 영원히 기록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고인 측도 언제든 열람이 가능해 유포 위험이 상존하는 만큼 법원이 판결문 작성단계에서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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