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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종로도서관 만 99돌 (11.5)

입력
2019.11.0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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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도서관이 99년 전 오늘 문을 열었다. 사진은 62년 종로도서관 열람실 풍경. photoarchives.seoul.go.kr
종로도서관이 99년 전 오늘 문을 열었다. 사진은 62년 종로도서관 열람실 풍경. photoarchives.seoul.go.kr

서울 종로구 사직로 종로도서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식 공공 도서관이다. 1906년 설립된 평양 ‘대동서관’은 1910년 한일강제합병 이후 문을 닫았고, 1901년 ‘부산독서구락부’란 게 더 전에 있었지만, 일본인이 설립해 얼마간 운영한, 엄밀한 의미의 공공도서관은 아니었다. 종로도서관은 보성학교 교장을 지낸 일제 강점기 교육인 윤익선(1871~1946)이 사비를 털어 ‘경성도서관’이란 이름으로 1920년 11월 5일 개관했다. 원래 위치는 유길준의 유폐지로 유명한 거부 민태호의 종로구 가회동 정자 ‘취운정’이었다. 현 감사원 앞 건널목에 취운정터(북촌로 112) 명패가 있다.

사회ㆍ역사학자 신용하가 집필한 ‘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윤익선은 황해도 장연 출신 천도교도로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훗날 보성학교 교장을 지낸 인물이다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 사장으로 1919년 3ᆞ1운동 당일 전국에 신문을 배포해 2년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 북간도 동흥학교 교장을 지냈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그가 고향에서 독립을 목표로 “대한적십자사 및 의용단을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 친일파 암살과 상해 임정과의 연락 등 활발한 활동을 펴다가 피체(被逮)돼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된다”고 적고 있다. 정부는 62년 그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훗날 민족문제연구소는 그의 말년 친일 행각을 공개한 바 있다.

어쨌건 그는 자신의 재산과 지인들의 후원금으로 경성도서관을 건립했다. 공립도서관인 경성부립도서관보다 2년 앞선 거였다. 개관 당시 장서는 1만5,000권에 달했고, 당연히 무료였다. 여성들을 위한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했다. 경성도서관은 운영난을 겪다가 이범승이 1921년 탑골공원 인근에 세운 같은 이름의 도서관과 통합돼 본관-분관 체제로 운영됐고, 23년 민영휘의 기부금으로 2층 석조건물을 세우면서 어린이관을 마련하고, 여성 야학 및 강좌를 마련하기도 했다.

윤익선이 24년 만주로 떠나면서 취운정 분관은 폐쇄됐고, 1926년 3월 경성부에 양도돼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으로, 45년 9월 서울시립 종로도서관으로 변천했다. 1967년 탑골공원 일대 재개발과 함께 휴관했다가 이듬해 8월 사직공원 인근 지금 자리에 건물을 세워 이사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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